노무현 대통령이 고영구 국정원장을 임명하면서 국회에 했던 비난은 수위를 넘어선 지나친 말이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반대의견을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 행사일 수 있으나 이 경우 진지한 공적 설명을 제시하는, 대통령으로서의 태도가 견지됐어야 한다. "월권을 말라"거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정권의 시녀역할을 할 때 행세하던 사람이 색깔을 씌우려 하느냐"는 원색 비난은 대통령의 품격을 스스로 손상시켰다. 결과적으로 가능한 법적 권한행사를 감정적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막말로 비판받을 일을 자초한 셈이다.정보위의 판단이 대통령의 선택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국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 판단을 밝히는 것은 엄연히 보장된 국회의 영역이다. 국회는 국정원장에 대한 사상검증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대통령이 여기에 반대해 고 원장의 임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그 이유와 당위성을 성실하게, 최대한의 설득력을 갖춰 밝히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취해야 할 방식이다. 그리고 이는 국회에 대한 반박인 동시에 국민을 상대로 하는 입장표명인 만큼 논리와 품위를 갖춰야 했다.
노 대통령이 보인 것은 국회의 결정이 기분에 어긋난다고 해서 의정을 깔아뭉개려는 듯한 어법과 태도였다. 여기엔 또 하나의 권위주의와 독선이 느껴지며, 국민을 의식하고 야당을 상생의 대상으로 여기려는 행정수반의 자세보다는 사인의 분노와 격한 싸움만이 드러나고 있다.
고 원장 임명 파동은 국정원장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도록 한 법 규정에서 비롯됐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이 파동은 서로가 정치적 금도를 지키면서 넘길 수밖에 없다.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지킬 것은 서로가 지켜주는 기본을 대통령이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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