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자전거 도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자전거 도둑

입력
2003.04.28 00:00
0 0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가 있다. 1948년 이탈리아의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가 만들었다. 전후 네오 리얼리즘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2차 대전 후 로마는 폐허로 변했다. 실업자인 주인공은 드디어 직업을 구했다. 길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인데, 자전거가 필수적이다. 아내의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구한다. 현진건의 '빈처'를 떠올리게 한다, 어린 아들이 따라 나선다. 그런데 자전거를 잃어버린다. 자전거를 훔친 범인을 찾지만 그는 너무 가난했고, 간질병 환자다. 그 후 주인공은 축구장 밖에 서 있는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지만 결국 붙잡힌다. 아들 앞1에서 온갖 수모를 당한 주인공은 풀려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하다.>■ 이 영화에 대해 극작가 이근삼은 "6·25 직후 하루를 버티기 위해 악을 쓰며 살던 우리 사회의 단면 같아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소설가 김소진은 이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는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에서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난 무엇보다 외로움을 느꼈다.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당한 주인공의 무너진 등이 견딜 수 없어 콧등이 시큰해졌고, 그보다는 무너져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어린 아들 때문에 나는 혀를 깨물어야 했다>고 썼다.

■ 얼마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남대문 시장을 둘러보고 한 말이 화제다. "경기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요즈음 세상살이가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나쁘다고 한다.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각종 통계들이 이를 말하고 있다. 동전 사용량이 크게 증가한 것이나, 알루미늄제 다리 난간을 통째로 뜯어가고 수십개의 벌통을 트럭으로 훔치는 등 IMF형 좀도둑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노점상이 다시 늘고 있다는 통계도 마찬가지다.

■ 노무현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진이 19일자 신문에 실렸다. 18일 오전 주민 반환을 앞둔 청남대 미니 골프장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표정이 무척 밝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뚜렷한 이유없이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알 수가 없다. 분배를 중요시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아직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자꾸 오버 랩 된다. 자전거 핸들을 꼭 쥐고 달리는 노 대통령이 IMF가 가져왔던, 그리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저 멀리 날려버릴 수 있을까.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