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이 센지 지음·김은주 옮김 다빈치 발행·1만
오스트리아 출신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듣는 이름이 아니다. 프랭크 휘트포드가 쓴 평전 '에곤 실레', 같은 제목의 '국산' 평전이 나와 있고 대학가나 도심의 카페에 더러 그림이 걸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시회 한번 열리지 않았으니 일반인들이 직접적 감동으로 그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순식간에 눈길을 빨아들이고 때로는 충격, 때로는 연민을 자극하는 그의 그림은 국내에도 적지만 열성적인 팬을 확보했다.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은 일본 문단의 중진 작가가 실레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듬은 평전이다. 저자는 우연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접하고 '농밀한 관능의 냄새와 장식적·추상적이면서도 생생한 감촉'에 충격을 느낀다. 그러나 이 충격은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다. 클림트의 '주변인물'로 소개된 실레의 그림을 대하는 순간 그는 한층 강렬한 충격과 흡인력에 몸을 떨어야 했다.
저자가 실레의 그림에서 처음 맡은 것은 '고통에 겨운 듯한 성(性)의 냄새', 그것도 '굴절된 성의 은밀한 냄새'였다. 관능의 환희와 윤기 대신 대부분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육체를 묘사한 실레의 그림은 에로티시즘에 대한 통념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흔히 요절한 천재 예술가의 삶에서 떠올리게 되는 '거창한 몸짓' 대신 평범하고 사소한 사건으로 점철된 실레의 삶에서 저자는 '따뜻한 불안감'을 안게 되고, 이를 통해 짧았던 실레의 삶과 예술을 짚어 나간다.
실레는 세기말의 음울한 그늘이 드리워진 1890년 도나우 강변의 소도시 툴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지독한 매독성 질환 때문에 어머니는 세 차례나 사산을 겪어야 했고 큰 누나 엘비라도 10세에 숨졌다. 저자는 이 '매독의 기억'이 죽는 날까지 실레의 삶과 작품을 따라다닌 '비틀린 성'의 이미지를 낳았다고 본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간 그는 보수적 풍토에 반발, 3년 만에 중퇴하지만 스승 격인 클림트를 만나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미성년자 유괴 및 외설 혐의로 24일 간의 옥살이를 하기도 한 실레는 25세에 여염집 처녀인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한 후 그 동안 자신이 울을 쳐 놓았던 '황량한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듯 했다. 1918년 작 '가족'은 풍만한 아내와 곧 태어날 상상 속의 아기, 모처럼 안정된 자세와 표정의 자신을 그렸다. 국제적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독감으로 임신 6개월의 아내가 숨지고 자신도 3일 만에 28세를 일기로 그 뒤를 따랐다.
이 책은 스테판 츠바이크 등 동시대 인물을 들어 시대 상황을 유추하고 기존의 평전과 영화 등 관련 자료를 비교했다. 깔끔한 글이 읽기 편한 데다 대부분의 작품을 소개해 작품집으로 읽을 수도 있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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