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선 시·김양수 그림 시와시학사 발행·4만 9,000원
2년 전 50세로 세상을 떠난 시인 이성선의 기일(5월 4일)을 앞두고 그의 시에 한국화가 김양수씨가 그림을 그린 시화집 '산시(山詩)'가 나왔다.
'산시'는 당초 1999년 나온 시집이다. 생전의 이성선 시인은 '산시'를 시화집으로 내고 싶어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우연히 이 시집을 읽게 된 화가 김양수씨는 머리맡에 시집을 두고 읽으면서 시에 취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산시'는 자연과의 대화 속에서 선(仙)의 세계를 추구했던 이성선 시인의 세계관이 가장 잘 드러난 시집이지만, 생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시화집 '산시'는 5부로 나뉜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자신의 존재를 고백하는 '저 산은 모른다', 우주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편들로 묶인 '장엄한 배경', 우주에서 배우는 사랑의 시편 '마음 꽃 한 송이', 자연과 함께 선에 다가서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숨은 산', 끝으로 유언처럼 들리는 시편을 모은 '나 없는 세상'이다.
이성선 시인은 선시 같은 시풍으로 우주의 겸허한 질서를 노래했다.
그의 시에서는 낮은듯 하지만 깊은 울림이 오래도록 들린다. '나귀의 귀 속에 우물이 있네 /우물 안에 배꽃이 눈을 뜨네 /마을에 숨은 /당신 찾아가는 길 /나이 먹어도 나 아직 젊어라'('봄밤' 전문)
'가랑잎 종이 위에다 /평생 이름을 적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슬픔이더냐 /차라리 실컷 /물 위에 달빛 붓으로 글을 쓰겠다'('물 위에 달빛 붓으로' 전문)
그는 이 시집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 하나 건드리지 않고 세상을 건너갈 수는 없을까. …입고 갈 수 있는 누더기 한 벌. 이 얼마나 고마운 세상인가. 달빛 속을 걸을수록 누더기는 눈부시다. 이제는 달빛 길로만 가리라."
갈수록 번잡해지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지워 신발도 없이 세상을 건너고자 했던 시인은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달빛이 물든 붓으로 쓴 시를 들려주고 있다.
시화집 자체도 한 편의 시를 닮았다. 김양수씨의 그림은 자유로운 운필과 깊은 먹의 맛이 시인의 시와 잘 어울린다. 그런데 시화집의 가격이 무려 4만 9,000원이다. 그림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종이를 찾아 도톰하고 거칠거칠한 고급 마분지에 인쇄하고 실로 꿰맨 수제본으로 1,500부 한정판으로 찍다 보니 비싸졌다. 종이에 잉크만 바르면 책이라는 생각을 뛰어넘어 예술작품 같은 책을 만듦으로써 책과 시인에게 경의를 표시했다고 보면 되겠다.
시화집 출간에 맞춰 서울 인사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시화전 '산(山)·시(詩)·(畵)'가 23일 개막해 5월 4일까지 열린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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