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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전쟁의 본질 고발 프랑스문단 "깊은 공감대"/황석영 "무기의 그늘" 불어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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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전쟁의 본질 고발 프랑스문단 "깊은 공감대"/황석영 "무기의 그늘" 불어판 출간

입력
2003.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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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드리워진 '무기의 그늘'에 프랑스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전쟁은 가장 냉혹한 형태의 비즈니스"라는 소설가 황석영(60)씨의 목소리에 프랑스 문단과 현지 언론은 주목했다. 그 목소리는 황석영씨의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의 주인공 안영규 병장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의 비극적 추문을 생생하게 재현한 '무기의 그늘'은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진형준)의 지원으로 프랑스어로 번역돼 최근 쥘마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중편 '한씨 연대기'와 단편집 '삼포 가는 길' 프랑스어판을 펴낸 지 1년 만이다.

소설 출간에 맞춰 파리를 방문한 황씨에게 라크로아지, 아르테 TV 등 언론의 인터뷰와 라디오 출연 요청 등 열띤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문학전문 서점 '라르브르 아 레트르'에서 열린 독자 사인회에 참석한 한 프랑스 독자는 "지난해 나온 '한씨 연대기'와 '삼포 가는 길'을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가 파리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서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프랑스 문학계는 특히 황씨의 소설 '무기의 그늘'이 추악한 전쟁의 본질을 고발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 대해 프랑스 지식인들의 거부감이 팽배한 상황도 한 배경이다. 프랑스 언론은 황씨가 소설을 통해 부르짖었던 반전(反戰)의 목소리에 큰 관심을 보이며 지난 세기의 베트남 전쟁에 비춰 21세기의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되새길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23일 퀼튀르 라디오에 출연한 황씨는 "미국의 전쟁은 달라졌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미국은 전쟁의 교훈을 배우지 않았다"고 답했다. "미국의 전쟁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지향하는 패권주의의 발현이자 냉혹한 자본주의적 비즈니스이며, 문화·종교·인종적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했다.

렉스프레스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전쟁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인명 피해가 상대적으로 줄었고, 그로 인해 개인의 상처도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TV에서 아시아의 한 세기 역사를 정리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 자신은 격동과 변화를 몸으로 겪었음을 알게 됐다"며 "전쟁의 상처로 신음한 20세기 현대사와 기억을 공유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언론은 분단 한국의 지속적 긴장 상황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 아닌가"라는 아르테 TV 질문에 황씨는 "지금은 정전상태로, 미국은 한국과 상관없이 언제든 북한에 대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두려운 상태"라면서 "새 정권이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어야 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는 황씨는 "북한은 핵 보유가 아닌 다른 방안을 강구해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전의 김일성 주석과 만났을 때 시대 변화에 따라 체제를 바꾸려는 열려진 의지를 볼 수 있었다. 금강산을 관광특구로 지정하는 등 개방에 대한 몸부림을 보였지만 미국 등 강대국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은 '무기의 그늘' 아래 있다. 대포 위에서 잠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그의 설명에 TV 사회자는 깊은 공감을 표했다.

/파리=글·사진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쥘마출판사 르로아 사장

23일 쥘마출판사에서 만난 로르 르로아(35·사진) 사장은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황석영씨의 소설 '무기의 그늘' 출간에 맞춰 문학전문 서점 주인들과 조찬 모임을 가졌다. 다른 문학 작품을 냈을 때 3, 4명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20여 명이 참석했다. 놀랍고 기쁘다."

3년 전 전문 통·번역가인 최미경씨로부터 황석영씨의 작품을 소개받은 르로아 사장은 그의 소설이 "아시아인의 손으로 씌어졌으되 아시아를 뛰어넘는 데" 주목했다. 그는 2002년 4월 단편집 '삼포 가는 길'과 중편 '한씨 연대기'를 프랑스 시장에 선보여 '산뜻한 성과'를 거둔 데 힘입어 1년 만에 '무기의 그늘'을 펴냈다. 르로아 사장은 "전쟁에 대한 묘사가 정교하고 생생한 데 감탄했다"며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쥘마출판사가 한국문학 작품을 프랑스 문학계에 소개한 지 내년으로 꼭 10년 째다. 르로아 사장은 "출판사를 세운 지 2년 정도 지난 뒤였다. 다른 회사와 구별될 수 있는 출판물을 찾던 중 한국문학 작품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보았다. 1994년 '김유정 단편집'을 번역하는 것으로 한국문학 출판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춘향전',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 이승우씨의 '생의 이면' 등 다양한 작품이 쥘마출판사를 통해 프랑스에 소개됐다.

쥘마출판사는 현재 여성성을 주제로 한 한국문학 단편선을 기획, 번역을 진행하는 등 한국문학을 프랑스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국일보에 연재된 황석영씨의 소설 '손님'의 번역 출판도 준비하고 있다. 르로아 사장은 "한국일보에 '심청, 연꽃의 길'이 연재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고 기대된다"면서 "사회 참여 의식과 문학적 역량을 함께 갖춘 황씨의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할 수 있어 늘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리=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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