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선생님네가 내 집에서 걸어서 십 여분 거리로 이사를 오셨다. 그분들의 집은 베란다 창을 열고 나가면 서너 평 되는 뜰이 딸린 일층 빌라였다. 사모님이 잔디가 깔린 땅을 뒤집고 그곳에 밭을 일굴 거라고 하셨다. 밭. 갑자기 내가 들떴다. 네 평도 안될 그분들의 뜰을 나는 백 평쯤으로 생각하는지 호박구덩이를 파라느니 쑥갓 아욱 파 모종을 하라느니 박하며 콩이며 읊어 대다가는 "저한테 한 두 이랑만 주세요" 농담처럼 말했다.어느날 아침에 정말로 사모님이 전화를 하셨다. 채소들이 자랄 수 있게 땅을 일궈놓았고 내 밭이랑도 마련해놓았으니 와서 씨를 뿌리라는 것이었다.
신이 나서 달려가 보니 세상에나, 진짜로 내 앞의 밭이랑을 따로 일궈 놓으신 거였다. 책상 만한 크기에 불과했으나 농담이 진담이 될 줄이야. 뿐인가. 적상추와 아욱과 쑥갓 씨앗까지 준비해놓으셨다. 나는 부엽토를 헤집고 씨앗들을 뿌리며 '잘 자라거라' 만 하면 되었다. 식구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오느냐기에 농사짓고 왔어, 대답하는데 기분이 괜찮았다.
무슨 복일까.
그날 다음날인가. 아는 후배가 역시 내 집에서 걸어서 십 여분 거리로 이사를 왔다. 오래된 벽돌집에는 그야말로 마당이 한 뼘 있었다. 벌써 후배는 창문 밑의 땅을 파고 거기에 애기파 씨를 뿌려놓은 뒤였다. 후배와 함께 구파발에 가서 가지모종도 사고 애플이니 로즈마린이니 하는 박하도 사고 자스민도 한 그루 사고 풍란도 사고 보라색 흰색 작은 꽃들과 물봉숭아와 나리꽃도 사 가지고 돌아오는데 자동차 뒷자리가 화단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땅에 심어보고 싶어서 후배를 도와주는 척 섞은 낙엽들을 퍼 나르고 구덩이를 파주며 내 욕심을 챙겼다. 그리고는 또 여기에는 뭘 심어라, 저기에는 뭘 심어라, 잔소리를 해대었다. 내가 그럴 것도 없이 후배자신이 그 쬐그만 마당에 혹해 그 집으로 이사 온 것을 빤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사모님이 내 전화기에 메시지를 남겨놓으셨다. 내 밭이랑에 싹이 돋아났으니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무슨 볼일이 있어 당장은 못 가고 점심 근처에 전화를 드렸더니 안 계셨다. 두시에 전화를 다시 했더니 그때도 안 계셨다.
6시에 있는 약속을 지키러 나가면서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받으셨다. 푸른 싹들을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가보니 새끼 손톱 만한 싹들이 아귀다툼하듯 돋아나 있었다. 조그만 그것들을 들여다보느라고 약속이 늦어버렸다.
어느 날 오후에 후배가 없는 줄 빤히 알면서도 그 집 대문의 틈에 눈을 대고는 마당을 들여다보다가 앞 공사장에서 등짐을 져 나르던 인부가 힐끔힐끔 나를 주시하는 통에 무안해 돌아오면서 문득 깊은 숨이 쉬어졌다.
마음이 들뜰 일이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는 생각.
마음이 차오르기는커녕 수 백 명이 죽는 벼락같은 참사소식에 눈앞이 아득해지고, 그것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제는 수만 명이 죽는 전쟁이 터지고,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이 여겨지는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그 위협 때문에 격리되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외출도 못하는 현실.
걸어서 십분 거리에 아는 이웃이 생기고, 남의 집 뜰의 손바닥만한 땅에 씨앗을 뿌려놓고 싹이 돋아날까 기대하고, 후배네 닫힌 대문 안의 가지 모종이며 나리꽃이 잘 있는지가 그토록이나 궁금했던 것은 그나마 그것들이 얼마간 마음을 들뜨게 해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삼월이면 사월이면 세상을 물들이는 연두색들이 생성된다는 것을 잊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 경 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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