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지음·신유희 옮김 소담출판사 발행·8,500원
독특한 연애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로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의 작품이 최근 잇따라 번역돼 나오고 있다. 지난달 사랑―고독, 연애―사랑, 결혼―불륜 등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묶은 '황무지에서 사랑하다'(동방미디어 발행)가 출간됐고, 이달 초에는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남편을 기다리는 모녀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하느님의 보트'(자유문학사 발행)가 선을 보였다.
이어 나온 중편소설 '호텔 선인장' 역시 에쿠니의 깔끔하면서도 감성적인 글쓰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파트인데도 어떤 연유에서인지 '호텔 선인장'이라고 이름 붙은 낡은 건물에서 사는 '오이' '모자' '2'라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새로 이사 온 2는 위층에 사는 오이에게 운동을 그만 해달라고 말하기 위해 찾아간다. 오이에게도 2는 이사 후 맞는 첫 손님이다. 가벼운 다툼을 중재한 모자를 포함해 세 사람은 오이의 방에 모여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 서로 취미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틀리다. 모자는 위스키만 마시고, 2는 자몽 주스만 먹으며, 오이는 맥주를 즐기는 식이다.
하지만 이들은 만남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간다. 자신이 하찮으면서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또 서로에게 조금씩 자신의 일부분을 투영하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 속의 한 구석을 상대의 한 부분으로 채워나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파트가 헐리면서 헤어지고 말지만 그 만남 속에서 그들이 배운 것은 혼자일 때 몰랐던 즐거움과 쓸쓸함, 안타까움과 고마움 같은 것들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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