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그나드 데사이 지음·김종원 옮김 아침이슬 발행·1만8,500원
새 천년을 앞두고 언론 등 각종 기관들이 실시했던 '지난 천 년의 주요 인물' 조사에서 칼 마르크스는 항상 최상위권에 들었다. 영국 역사가 홉스봄의 표현을 원용하면, 20세기는 러시아 혁명에서 시작해 소련 붕괴로 막을 내렸다. 마르크스는, 그에 대한 싫고 좋음을 떠나, 인류의 생각과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마르크스가 동구권이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유일한 대안으로 세력을 갈수록 확장하고 있는 이 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현재 우리는 전지구화한(globalized)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다. 자본주의는 망하기는커녕 의기양양하게 득세하고 전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숱한 도전을 누르고 승리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완전히 틀렸는가. 저자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현실이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 명예를 회복할 자는 바로 마르크스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결코 자본주의의 벗은 아니었지만,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본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 애덤 스미스 이후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이해하고자 진지하게 시도한 인물은 오직 마르크스였으며, 마르크스 이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웃은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책의 제목인 '복수'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21세기 초두에도 계속되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내리는 복수다.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기만하고 속이고 살해하고 거짓 희망을 내놓은 사람들 모두에게 내리는 복수인 것이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사회 변화에 관한 그의 사상은 대거 왜곡됐다. 마르크스는 이런 것을 미리 알았길래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일까.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자는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점이다. 마르크스를 다시 읽어 그에 대한 오해나 오역에서, 그것이 의도적이든 몰라서 그랬든, 그를 구해내자는 것이다.
'마르크스를 조롱하거나 심지어 숭배하는 모든 사람 가운데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고 저자는 묻고 있다. 마르크스는 점성가가 아니라 역사 발전의 주체를 분석한 사회 천문학자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세계 역사에서 슬프고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에피소드는 끝났다며 또 다시 '복수'를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이름을 빌어 온갖 못된 짓을 자행했던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정녕 자신이 바라던 보답을 받게 될까.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주의는 존재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끝을 맺는다. 저 산 넘어 파랑새는 있는 것일까. 저자는 무거운 숙제를 넘겨주고 있다.
런던정경대학 부설 글로벌 거버넌스 연구소 소장이자 영국 노동당 상원의원인 저자는 오랜 학문적 연구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곤혹스럽고 도발적인' 문제를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다. 600쪽에 이르는 분량이 버겁기는 하지만, 지난 150년의 정치경제사를 통해 '자본주의의 부활과 국가 사회주의의 죽음'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어떤 연구소나 재단으로부터도 재정 지원을 받지 않았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밝힌다"는 저자의 말은 특히 사회과학 저술의 태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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