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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자연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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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자연의 빈자리

입력
2003.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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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플래너리 글·피터 샤우텐 그림· 이한음 옮김 지호 발행·3만8,000원

이 한 권의 동물 도감은 페이지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을 기점으로 유럽의 식민지 정복이 붐을 이룬 이후 500년 동안 지구에서 사라진 103종의 동물을 소개하고 있으니, 인간의 동물 포획을 고발하는 그림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설명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야생생물을 그리는 호주 화가 피터 샤우텐이 털끝 하나 발톱 하나까지 살려 세밀화로 복원한 사라진 동물의 모습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롭다.

박제가 있어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문제가 아니지만 많은 동물이 기록도 변변치 않아 샤우텐과 글을 쓴 생물학자 팀 플래너리는 세계 곳곳의 박물관을 찾아 다니며 멸종 동물의 실체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야생 동물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각고의 노력 끝에 샤우텐은 실물 크기로 동물 그림을 하나하나 그렸다.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은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 진경(眞景)의 동물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뉴질랜드 남섬에서 1500년 기록을 끝으로 멸종된 고원모아에서 1989년 이후 본 사람이 없는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의 아티틀란병아리에 이르기까지 멸종의 사유는 한결같이 인간의 포획과 개발이다. 식량으로 쓰고, 기름 가죽을 얻기 위해 또는 단순히 박제 장식용으로, 많은 경우 경작 등으로 동물의 주거지가 파괴되면서 동물들은 영원히 지구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이 책에는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원저 그대로 '자연의 빈자리'(A Gap in Nature)라는 제목은 인간의 이기적 행동의 결과를 고발한 이 책의 정신을 잘 살린 말이다. 비록 없어지고 말았지만 생물이 아니라 그림으로 종이에 모은 노아의 방주라는 표현도 어울린다.

북태평양 베링해 서쪽 바다에 살았던 스텔라바다소는 고래를 제외하면 18세기 중반까지 살았던 가장 큰 포유동물이다. 몸 길이가 8m에 무게가 10톤이 넘는다. 이들은 막대기로 툭툭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올 만큼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마리를 베면 모두 모여들어 다친 녀석을 감싸고 구조하려고 애쓸 정도로 서로 아꼈다.

하지만 인간은 식량으로 삼거나, 기름이나 가죽 확보를 위해 이들을 사냥했다. 1741년 이 바다의 커맨더 제도에 난파한 자연탐사대원들은 거대한 이 생물이 바다에서 말 그대로 우글거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하지만 27년 뒤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아무도 이들을 본 사람이 없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등장하는 날지 못하는 새 도도는 가장 널리 알려진 멸종 동물이다. 16세기 초반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 동쪽 인도양에 있는 모리셔스 섬에서 본 뒤 알려졌으며, 기록으로는 1598년 네덜란드 탐험대가 남긴 데 처음 등장했다.

비둘기과에 속하는 도도는 이 섬 말고도 인근 레위니옹과 로드리게스 섬에도 유사종이 있었지만 1681년 기록을 끝으로 사라졌다. 섬에 원숭이와 돼지가 들어오면서 새끼를 키우기가 어려워진 데다 인간의 사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옥스포드 애시몰린 박물관에 있던 온전한 박제마저 화재로 불타 지금 남은 것은 머리와 오른쪽 발 뿐이다.

호주 남동부 태즈메이니아 섬에 살았던 태즈메이니아 늑대는 새끼 주머니를 가진 유대류로는 가장 큰 포식자였다. 얼굴 생김이 개와 비슷하고, 몸은 호랑이를 닮아 매우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이 늑대도 인간의 사냥으로 멸종했다. 머리 가죽에 현상금이 붙었고, 수가 줄어들자 값은 더 올라갔다. 야생 태즈메이니아 늑대가 마지막으로 포획돼 동물원으로 향한 것은 1933년이었다. 하지만 그 지역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암컷 늑대는 열악한 동물원 환경 때문에 제대로 쉴 만한 굴도 없이 쇠창살로 둘러친 우리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이 늑대는 정부가 보호법을 제정한 1936년에 변변한 사육사도 없이 동물원에서 죽고 말았다.

문제는 "지구 역사상 한 종이 다른 모든 종을 멸종시킨 것은 지금이 처음"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동식물 멸종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영장류는 최근 2년 동안 120종에서 195종으로 늘었다. 지난 50년 사이 멸종한 동식물은 800종이 넘는다. 도시 개발, 삼림 황폐화에 따른 서식지 축소와 사냥 등이 주된 원인이다. 지난해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이 발표한 희귀 동식물 목록에는 무려 1만1,167종이 올랐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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