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졸이는 프로포즈 끝에 드디어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이 기쁨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가슴이 벅차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을 대충 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아뿔싸, 생각지도 않던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데이트 일정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을 전제로 짜여졌던 터였다. 평소에는 반갑던 봄비가 어찌 그리 원망스럽던지….비오는 거리에 그녀가 서 있었다. 처음 만났는데 우산을 같이 쓰기도 뭐했다. 각자 우산을 쓰고 길을 걸으며 넌지시 물어보았다. "어디로 갈까요?" "아무데나요." 갑자기 막막해졌다. 며칠을 고생하며 짜놓은 계획이었지만 비오는 날을 대비한 일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심 고심하다 비도 피할 겸 영화관에 들어갔다. 서먹서먹한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고, 그런 분위기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뭐 할까요?" "아무거나요." 뾰족한 수는 없고…. 아이고 모르겠다. 영화 한 편을 더 보기로 했다.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버렸다.
영화를 두 편이나 본 뒤에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맥주도 한잔 했다. 그리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다른 연인들은 비오는 날 어떻게 데이트를 하는 거야?' 다들 비슷했다.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 보고, 집에 바래다 주고…. 다들 그렇게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함께 보고 느끼는 것, 서로의 취미를 함께 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 말 그대로 공유할 '거리'를 찾는 게 진짜 데이트가 아닐까? 그저 매번 같은 형식으로, 같은 내용으로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우리는 너무 젊다.
난 뒤늦게 후회한다. 아, 그녀와 비 오는 남산을 걸어 올라가 볼 걸, 그녀와 함께 촛불시위에 참가해보는 건데, 야구장에서 목이 쉬도록 함께 응원하는 것도 괜찮았는데, 고궁을 같이 거닐어 보는 건 어땠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그 속에서 우리는 만남의 과정과 방법까지 획일화한 것은 아닐까? 5분만 늦어도 바로 휴대폰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 편지로 사랑을 전하고 집에 붙어 앉아 하루종일 전화를 기다리는 그 순수했던 마음들은 어디로 가버렸나.
김 동 현 상지대 국문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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