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모(安峯模·45)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 중에서 유난히 비판정신을 강조한다. 대통령의 국정활동을 기록, 관리, 보관해서 후대에 온전하게 넘겨주는 자신의 업무가 역사의식에 입각한 비판적 시각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정기록비서관은 대통령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되는 사관(史官)이라는 얘기다.그는 "대통령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 총리, 장·차관 등 국정의 주요 담당자에 대해 엄정하게 기록함으로써 훗날 책임소재를 명백하게 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에게 불리한 것이라도 가능한 한 많은 기록을 남겨달라"고 주문하는 노 대통령은 그를 한결 편안하게 해준다고 한다. 또 비공개 회의에서 비밀사항을 다룰 때 기록할지 여부를 물어보면 노 대통령은 대부분 허용한다고 한다.
부산대 77학번인 그는 운동권 출신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부산일보 기자, 부산매일신문 사회·경제부장, 낙동 케이블TV 보도국장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부산 인맥'에 포함된다. 1987년 부산일보 기자 시절, 거제 대우조선 파업사태와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사태를 취재할 때 현장에서 투쟁하던 '노무현 변호사'로부터 "제일 공정하고 정확하게 쓴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이렇게 해서 노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안 비서관은 2000년 가을, 해양수산부장관이었던 노 대통령이 친분이 있는 언론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장관이 나의 최종 정치적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노 대통령의 대권 의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가 노 대통령 캠프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인 2002년 5월이다. 부산대 동기인 이호철 민정1비서관, 후배인 정윤재 민주당 부산 사상지구당위원장의 적극적 권유가 있었다. 그는 "노무현이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 흔쾌히 뛰어들었고,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격히 추락할 때도 "반드시 다시 올라간다"는 믿음으로 버텨냈다.
청와대 생활 2개월째인 그는 "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이 국정기록 업무와는 궁합이 딱 맞는다"고 말한다. 그는 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마음 속으로 "노 대통령이 실패하면 내 인생도 실패한다. 새 정부의 성공, 그것 하나만을 생각하자"고 다짐했던 기억을 거듭 되새기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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