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金東煜·42) 교수의 진료가 있는 날 진료실 밖에선 환자들이 또 하나의 모임을 갖는다. 마스크와 모자를 쓴 그의 환자들은 거의 만성골수성백혈병 또는 그 전단계인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 그들은 자신의 혈액검사 결과를 들여다보며 "혈소판 수치가 생각보다 좋게 나왔다"고 위로하거나 "약은 식사 중간에 먹는 게 좋다"고 조언하는 등 활발히 의견을 나눈다. 환자 중엔 독일 하이델베르그대학병원의 백혈병 환자와 E-메일로 정보를 교환하는 이도 있다. 독일 환자의 담당의사는 유명 백혈병 전문의인 안데라스 호카우스 박사. 김 교수는 지난해 학회에서 호카우스 박사를 만나 자기의 환자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환자들에겐 더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주어야 합니다. 인터넷 이용이 활발할수록 의사의 정보가 더 중요하죠. 환자가 자세히 알고 치료의 득실을 이해하고 선택할 때 의사와 함께 끝까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환자가 의사만큼 알아야 한다는 것은 김 교수 자신의 지론이다. 그래서 김 교수의 오전 진료는 늘 점심시간을 넘겨 오후 2,3시에야 끝난다.
김 교수는 1995년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서 골수를 이식받는 타인간 골수이식에 국내 최초로 성공, 지금까지 국내 타인간 골수이식의 70%정도를 시술했다. 1997년 미국으로 입양된 성덕 바우만이 국내에서 골수기증자를 찾아 새 삶을 살게 돼 화제가 됐을 때 김 교수는 "골수기증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국내 글리벡을 복용하는 환자의 60∼70%가 그의 환자다.
김 교수는 "급성 백혈병은 여전히 사망률이 높지만 이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질병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인터페론을 쓰는 표준 항암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 글리벡을 쓰면 95%가 10∼15년 생존할 것으로 기대돼 골수이식을 하지 않아도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
또한 미니 조혈모세포 이식방법이 정교해졌다. 미니 조혈모세포 이식이란 골수를 이식하는 대신 조혈촉진제를 주사해 말초혈관에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한 뒤 이식하는 방법. 골수이식보다 항암제를 조금만 써도 되고 입원도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한 반면 재발률이 50%정도로 높다는 것이 문제다. "3세대로 분류되는 최근의 미니 조혈모세포 이식은 일단 어떤 암에 효과가 있는지 밝혀져 있고(만성 골수성 백혈병에서 가장 효과적), 실시간 암세포 진단기술(Real-time PCR)을 이용해 재발률을 예측한다는 점에서 앞서 있습니다. 이 진단법으로 재발이 예상되면 그 때 면역세포를 주입해 암세포와 싸우도록 합니다."
여기에 김 교수는 글리벡의 용도를 다양하게 연구, 백혈병 치료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식 전 미리 글리벡을 투여해 암세포를 무력화하면 항암제를 적게 써도 되기 때문에 합병증 사망위험이 크게 준다. 이식 후에도 재발이 예측될 때 글리벡을 투여한다.
"글리벡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내성입니다. 글리벡이 작용하는 단백질 부위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기 때문이죠. 최근엔 이러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보조 약물을 연구중이라 병용하는 방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1983년 국내 최초로 골수이식에 성공한 가톨릭의대 백혈병치료팀은 연 255건(2002년)의 골수이식으로 전세계 700개 골수이식센터 중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타인간 골수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김 교수는 신장내과 전문의가 될 뻔했다.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백혈병환자에 보인 애착과 실력을 눈여겨 본 스승 김춘추 가톨릭의대 혈액내과 교수가 그를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그는 "이제 백혈병 치료는 환자 개개인에 따라 치료과정과 약이 다른, 재단 치료가 됐다"며 "백혈병은 불치의 병이 아닌 극복할 수 있는 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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