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공포로 중국 베이징(北京)이 전시를 방불케 하는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24일 베이징역은 시를 빠져 나가려는 시민들과 외지 노동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베이징의 국제적 관문인 서우뚜(首都) 공항도 마스크를 낀 채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외국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시민들은 하루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베이징을 산시(山西)성, 캐나다 토론토와 함께 여행자제 지역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에 한층 겁에 질린 표정이다. 어느 지역에서 또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등의 소문이 돌면서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지고 있다. '정부가 베이징을 봉쇄할 것''베이징 일원에 계엄령이 선포될 것'이라는 등의 각종 유언비어가 '베이징 엑소더스'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부자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피해갔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베이징역에는 사스에 전염될 것을 우려한 승객들이 몇 시간씩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산시성 등 사스가 심한 지역으로부터 베이징으로 오는 열차는 운행을 제한하고 있다는 설도 돌고 있다. 베이징의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외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내 인민병원과 국립도서관도 24일부터 폐쇄됐다. 인민병원 입원환자와 의료진 등 2,000여명은 시내 6개 병원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인민병원 주변에 접근 금지선을 치고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시내에는 며칠 전부터 뿌리기 시작한 소독약 냄새와 마스크를 한 사람들로 인해 거대한 병원을 연상케 한다. 학교와 호텔, 백화점, 시장은 물론이고 주택가에도 소독약이 연일 뿌려져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슈퍼마켓과 약국은 생필품 사재기로 관련 물품이 동이 났다. 마스크와 예방약으로 알려진 판람근(板藍根), 온도계, 소독약, 해열제 등은 웃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울 정도로 물건이 달린다. 라면과 쌀, 간장, 화장지 등도 외출을 꺼리는 시민들이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시 당국은 생필품의 가격 인상을 엄격히 규제하고 물품 공급량을 늘렸지만 시민들이 '사스 지구전'을 준비하면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4성급과 5성급 호텔들도 숙박률이 크게 떨어져 1989년 6·4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불경기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택시영업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시내 택시 6만대 중 1만대가 운행 중지된 상황이고 운행 중인 택시도 손님이 크게 줄었다.
시내 동북부의 한국인 집단 거주지인 왕징(望京) 등의 한국인 업주들도 울상이다. 최근 며칠간 시민들의 사재기로 매출이 올라간 슈퍼마켓을 제외한 나머지 식당 등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중국 정부는 23일 '사스예방치료지휘부'를 설치해 우이(吳儀) 부총리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베이징에만 총본부와 지역별 본부 등 21개 사스 통제센터를 설치해 가동중이다. 하지만 당국의 뒤늦은 법석에 시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국의 지식인들도 24일 인터넷을 통해 정부의 늑장대응을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사스 실태공개 약속 준수, 환자 전원에 대한 무료시설 격리, 무료 사스 진단 등 10개 항의 대책을 요구했다. 중국 지식인의 이 같은 서명운동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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