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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한번 쏘고… 두번 쏘고… 자꾸만 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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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한번 쏘고… 두번 쏘고… 자꾸만 쏘고 싶네"

입력
200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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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활터 '황학정(黃鶴亭)'. 고종 황제가 세웠다는 이 곳에는 매일 궁사들로 넘쳐난다. 모두 전통활 '국궁'을 즐기는 '사원(射員·활을 즐기는 회원들을 일컫는 말)'들이다.사대에 줄지어 선 궁사들. 한 명씩 화살을 현에 걸고 현을 힘껏 당긴다. 과녁을 노려보는 눈매가 매섭다고 느낀 순간 화살은 어느새 휘익하고 바람을 가른다.

자신을 붙들고 있던 활을 떠난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고 곧바로 '타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화살이 과녁을 때렸다는 신호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면 마음속까지 개운해진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공중에 뜨는 순간의 황홀한 느낌, 그리고 과녁에 적중할 때의 소리가 주는 통쾌함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몰라요. 생활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죠." 황학정의 부총지배인격인 곽상용(62) 부사두는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은 흡사 골프공이 그린을 향해 날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예찬한다. 한때 골프광이었던 그는 활쏘기에 빠진 이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무예인 국궁이 생활 스포츠로 변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궁이라면 중·장년이나 노인층이 찾는 원로 스포츠들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이나 여성, 주부들로 동호인들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인기 대중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궁은 서서 운동하는 스포츠. 어떻게 운동이 될까. 그런 의문이 들지만 실제 운동효과는 만만치 않다. "사대에 서서 화살을 당기고 놓는 과정에는 엄청난 힘이 들어갑니다. 신체 구석구석까지 안쓰이는 근육이 없을 정도니까요." 황학정 김상중(45) 총무는 "활을 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전신운동이 된다"고 설명한다.

땀을 흘릴 만큼 격렬하지는 않지만 곧은 자세로 활시위를 당기려면 다리에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 사대에 서서 과녁을 겨누는 궁사를 등 뒤에서 밀어 봐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장단지를 만져 보면 단단하다. 축구 선수나 마라토너의 다리를 만지는 느낌이다.

손끝에 와닿는 팽팽함 또한 결코 간단치 않다. 자연스레 손 끝을 지압하는 효과도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조준하는 순간에는 절로 단전호흡이 된다. 그 사이 폐와 심장, 위장, 대장의 운동이 활발해 지고 몸에는 절로 활력이 솟게 된다. 정력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 내공(內功)을 중시하는 단전호흡법 등 전통의 얼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최근 국궁을 배우기 시작한 신인가수 마야는 "처음 활을 배울 때 힘이 들고 어렵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막상 해 보니 너무 재미있다"고 즐거워한다. 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최근 1집 앨범 'Born to do it'의 타이틀곡 '진달래꽃' 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녀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빠졌다 반복되는 느낌이 너무 상쾌하다"고 말한다.

활을 쏘면 절로 수양도 된다. 과녁을 향해 바라보는 순간 만큼은 경건해지기 때문. "꼭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면 안 맞아. 마음을 비우고 정석대로만 하면 들어맞는 것이 활쏘기지!" 곽상용 부사두는 "호흡을 가다듬는 것은 곧 마음을 바로 잡는 것과 통한다"며"그래야 살도 맞고 운동도 된다"고 강조한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 배울때는…

과녁까지의 거리 145m를 활로 쏘아 맞추는 국궁. 국궁에는 우리의 기상과 예절이 배어 있다.

현재 국내에 5만여명의 동호인이 있는 국궁은 도심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고 야외 스포츠이면서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레포츠. 서울만 하더라도 시내에 10개의 국궁장, 전국적으로는 300여개의 국궁장이 있다. 대부분 시청이나 군청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한다.

보통 초보자는 한달 정도 활시위를 당기는 방법과 자세, 호흡 등을 배운 뒤 3개월 정도면 과녁을 맞출 수 있다. 처음에는 울고 배우지만 일단 익히고 나면 웃어가면서 하는 운동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황학정 사대 앞에는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는 네글자가 적힌 석판이 있다. 활을 배울 때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행동함에 있어서도 예(禮)를 갖추고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 예의를 중요시하는 대표적 운동으로 일본의 검도를 들지만, 국궁에서 강조하는 예의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때문에 궁사들이 늘어선 사대 주위에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정적과 긴장감이 흐른다.

궁도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활터에서 입회비와 한 달에 3만∼5만원의 회비를 내면 기본기를 가르쳐 준다. 강습기간 중에는 활과 화살 등 기본장비를 무료로 대여해 주며 두달 정도 배우면 사대에 선다. 보급형 개량궁의 경우 35만원에 활과 화살 등 장비일체를 갖출 수 있다.

황학정을 포함, 일반 국궁장 대부분이 회원제로 운영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고 단기간에 전통 활쏘기 체험을 해보고 싶으면 경기 부천의 부천국궁장을 찾으면 된다. /박원식기자

● 양궁과 차이점

원래 국궁의 정식 명칭은 '궁도(弓道)'. 서양에서 들어온 양궁(洋弓)과 구분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국궁이라고 부르던 것이 굳어진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국궁이 양궁보다 훨씬 멀리 나간다는 것. 최대 사거리는 400∼500m. 대나무와 물소뿔, 소심줄과 단단한 뽕나무 뿌리 등을 재질로 사용해 탄력이 엄청나다. 양궁은 이에 못미친다.

대신 정확도는 뒤진다. 양궁은 정조준하지만 국궁은 오조준하기 때문이다. 오조준이란 정조준에 반해 마음으로 조준한다는 의미.

국궁에는 양궁에서 조준대 역할을 하는 조정틀이 없다. 유효 사거리도 양궁은 30∼90m가 기본이지만 국궁은 두배 가량 된다. 화살도 국궁은 양궁에 비해 살이 굵다.

국궁은 끝이 뭉툭한 화살로 145m밖에 떨어져 있는 과녁을 맞춰야 하며, 한 번 활을 잡으면 한 순(巡)에 5대씩 총 열 순 정도를 쏘는 것이 기본이다.

활을 사용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양궁과 비슷해 보이긴 하나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활에 화살을 거는 위치가 다르다.

양궁은 활의 왼쪽에, 국궁은 오른쪽에 화살을 건다. 점수 계산법 역시 달라 양궁은 표적판 색깔에 따라 점수를 달리 매긴다. 그러나 국궁은 과녁의 어디를 맞추더라도 점수가 같다.

/박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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