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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日초등생의 한국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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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日초등생의 한국 수학여행

입력
200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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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불국사 앞뜰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내 눈에 띄는 것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행렬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이란 직업 의식이 이렇게 작용하는가 싶었다.불국사 앞에는 수학여행단으로 보이는 일본 어린이 두 학급과 우리나라 어린이 네 학급 정도가 나란히 모여 있었다. 가만히 두 나라 어린이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일본 어린이들은 질서 정연한 반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김밥, 과자 등을 친구에게 던지고 피하느라 온통 수라장이었다. '어머니가 정성껏 싸준 김밥을 돌멩이처럼 던지고 장난하는 것도 그렇지만 던져서 흩어진 김밥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걱정이 되었다.

그 때 일본 아이 하나가 일어나서 "선생님, 저 아이들이 왜 저렇게 야단을 하는 거예요?"하고 물어 보았다. 선생님은 곁에 있던 내가 일본말을 알아 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인지 "응, 조선은 옛날 우리의 하인과 같은 나라였는데 지금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저 모양이구나. 하는 짓을 보니 저러다가 다시 우리 하인이 되고 말 것 같구나"라고 했다. 일본 선생님의 얼굴은 진지했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진땀을 느꼈다. '우리나라가 다시 일본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아이들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하다니, 어쩜 지금도 저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서글픔과 걱정이 뒤섞인 채 어린이들을 계속 지켜보았다.

역시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이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는 김밥과 과자들로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나무라지도 않더니, 어쩜 저렇게 더럽혀진 모습을 보고도 그냥 떠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원망이 앞섰다. 그렇지만 "당장 청소를 하고 떠나라"고 그 선생님을 꾸짖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일본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음식 부스러기들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김밥 덩이를 줍는 일본 아이에게 "저 아이들은 함부로 버리고도 그냥 갔는데, 왜 너희들이 이렇게 치우느냐?"하고 물었다. 그 아이는 내가 일본말로 묻는 것이 이상하였던지 힐끔 쳐다보며 "모두가 이웃이 아닙니까? 우리가 버린 것이 아니라도 더러운 것을 줍는 것이 무엇이 이상합니까?"하고 되물었다. 나는 너무나 창피해서 귀 밑까지 새빨개졌다.

"우리가 이대로 교육하다가는 큰 일 나겠군." 혼잣말로 하며 쓰디쓴 얼굴이 됐다. '하인 같았던 나라... 다시 우리 하인이 될 것 같구나...'하는 일본인 교사의 말이 귓가를 맴돌면서 "왱, 왱" 불자동차 소리를 내고 있었다.

/김선태·경기 고양시 원중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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