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폭죽소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폭죽소리

입력
2003.04.24 00:00
0 0

리혜선 글, 이 담·김근희 그림, 길벗어린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학대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은 무겁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족을 그리는 그들의 마음을 대하고,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잘 있다고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코끝이 찡해지며,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졌다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사실 바로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 민족 역시 살 길을 찾아 만주로, 연해주로, 하와이와 멕시코로 떠나갔으며, 1960년대에는 광부나 간호사가 되어 독일로, 70·80년대에는 중동으로 가지 않았던가. 지난날 타국에서 삶의 뿌리를 내려야 했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풀어낸 책 '폭죽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크다.

옥희의 부모는 일제 시대에 살 길을 찾아 만주로 이주한다. 그러나 여전히 살기가 막막했던 부모는 다음해 씨앗으로 쓸 곡식 한 됫박에 딸을 중국인 집에 팔고 만다. 주인집에서는 옥희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말라빠진 아이라는 뜻의 '써우즈'라고 부르며, 옥희를 노예처럼 부린다. 노망난 할머니 시중과 빨래에 가축 돌보기까지 잠시도 놀리지 않고 혹사시킨다.

그러나 고된 종노릇보다 옥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우리말을 못하는 것, 중국인들의 멸시를 받는 마음고생이었다. 옥희가 입은 치마저고리를 보고 주인집 쌍둥이 딸들은 '저고리는 너무 짧고, 치마는 가슴부터 내려오는 것이 너무 이상하고, 옷고름은 애가 말을 안 들어서 아버지가 염소처럼 끌고 다니려고 달아놓았다'고 한다. 자기네와 다른 것에 대한 첫 느낌인 것이다. 요즘처럼 매스컴과 교통이 발달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접하는 시대에도 다른 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열등감과 우월감이라는 양극단을 달리는데, 하물며 한 세기 전에는 어떠했겠는가.

강아지와 염소에게나 얘기를 하던 옥희는 마침내 옆집 소년 밍밍과 친해지고 설날 밤, 중국인들의 폭죽소리가 요란할 때 옥희는 밍밍과 쌍둥이에게 조선의 설날 풍속인 '쥐불놀이'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그날 아이들은 같이 밭둑에 불을 지르며 신나게 논다. 언어와 풍속은 달라도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영역,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상봉 프로그램이 던지는 잔잔한 감동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졌고 단지 현재 우리보다 조금 못사는 나라에서 왔을 뿐이지, 결코 차별할 대상이 아니다.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웃으로 어울리는 것, 마음을 조금만 열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