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하면 늘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색 빛깔로 윤이 나는 특산품 부채이다. 고급 한지 속에 가득히 펼쳐진 전주 부채처럼 다양한 색깔을 지닌 영화제가 바로 전주 영화제이고, 반대로 그 오색이 주르륵 펼쳐 졌을 때, 전주 영화제가 내뿜는 향기는 어떤 부채로도 감출 수 없다.
내가 첫 손가락으로 꼽는 전주 영화제의 색깔은 전주가 풀어 놓은 고전 영화의 향기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밑바닥 없는 애정에의 갈망과 지독한 반항의 기운을. 후 샤오시엔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충만한 여백의 미학과 중심부에서 밀려난 소년 소녀들의 가없는 슬픔의 표정을. 거장의 영화 기운과 고색창연한 전주의 기운이 어우러져 어찔하게 나를 사로 잡을 때. 그런 날은 지인들과 술을 마셨고, 정처없이 고사동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런가 하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거침없는 비판으로 일갈하는 전주 국제 영화제의 영화들은 전주 영화제의 또 다른 빛깔이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디지털 영화, 대안 영화의 힘을 표방한 전주 영화제는 미학적 대안, 테크놀러지의 얼터너티브, 시장의 대안을 웅변적으로 증거해 왔다. '대안'이란 전주의 대의 명분이 젊은 관객들의 패기만만함과 어울러질 때, 그때 문득 전주는 절정이었다. 도발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비디오를 갖다 댄 후 하루하루 전투를 치르듯 일기를 써 내려갔던 김진아 감독, 중국의 허름한 기차역과 버스 정류장 등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가감 없이 담았던 지아장커 감독. 전주에서 만난 패기만만한 젊은 그들은 모두 디지털이라는 작은 카메라 하나로 세상을 접수하고 있었다.
또 아이들과 함께 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가시 공주' 같은 애니메이션, 로저 코만의 영화와 브라질 최초의 공포영화 감독인 '코핀 조'의 다큐멘터리, 배꼽을 잡으며 '싸구려' 영화에 경배를 올렸던 '미드나잇 스페셜' 영화들. 전주를 불면과 환희, 축제와 들뜬 기운으로 만들어 버린 이 영화들은 반갑게 관객을 끌어 안는 전주의 세 번째와 네 번째 빛깔이다.
끝으로 무엇보다도 전주영화제를 그것답게 만드는 일등 공신의 빛깔은 바로 전주라는 오랜 고을이 주는 묵은 내음이다. 전주에 가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 진다. 전동 성당 앞의 길거리로 이어지는 한옥 마을에서 바라보는 전주는 흘러가는 시간이 천천히 기지개를 켜는 그런 곳이었다. 마치 유럽인들의 마인드를 지닌 듯, 전주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소담한 마음으로 관객을 맞는다.
이제 영화 '오! 수정'을 '홍상수 감독과 오수정양이 함께 만들어 낸 영화'라고 영역했던 해프닝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겠지. 세계적 거장 후 샤오시엔 감독과 샹탈 애커만과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회고전이 한꺼번에 열렸던 무지막지하게 행복한 일도 다시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단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이 있어도 나는 전주 영화제를 포기하지 않겠다. 왱이집의 맵디 매운 콩나물 국밥과 전주 지천 옆에서 오모가리탕을 먹으며 한 잔 들이키는 봄밤의 충만함을 다른 곳에서 어찌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 전주는 해방구다. 전주는 도발이며 충만이다. 내게 4월의 길은 늘 전주로만 통한다.
/심영섭·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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