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언행을 되짚어보면 국내외 현안에 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북한 핵 문제와 한미관계 등 대외 문제에 있어서 실용주의적 방식을 택하고 있음을 이미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23일 안보관계 장관·보좌관 간담회에서도 베이징 3자 회담과 관련, "우리 정부의 회담 참여는 과제가 아니다"라면서 "대화의 성공과 실용적 결과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노 대통령의 현실주의적 접근이 더욱 부각돼 보이는 이유는 국내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기류가 강하게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오보와의 전쟁','족벌언론의 폐해' 등을 거론하면서 언론의 역기능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췄던 노 대통령이 22일의 국무회의에서는 언론의 순기능을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 언론보도가 국정의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발언의 요지였다. 청와대측은 "평소 생각을 얘기한 것일 뿐 대통령의 언론관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족벌언론으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고 지금도 그 고통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날을 세웠던 점을 감안하면 분명 눈에 띄는 변화다.
노 대통령은 또 22일 국무회의에서 전교조의 반미교육에도 일침을 가했다. 국가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교원단체가 교육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 발언은 같은 개혁성향을 보여왔다는 측면에서 전교조가 노 대통령의 우군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여기에는 5월 방미를 앞둔 시점에서 미국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불식시키려는 외교적 고려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22일 이루어진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동도 현실주의적 접근의 범주에 포함된다. 청와대측에서는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이 회동이 4·24 재보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민주당측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의 회동이 예고되면서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회동이 좀더 일찍 이루어졌어야 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노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이렇게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23일 "큰 방향선회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현 정부의 지상과제인 개혁 추진에 있어서도 항상 현실주의·실용주의적 자세를 견지해왔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다만 청와대내에서도 노 대통령이 전반적 국정운영에 있어서 현실과 명분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반대 세력을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지지기반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론이 나온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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