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정채봉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에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깊이를 놓고 보자면 동화 작가인 고(故) 정채봉씨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다룬 '오세암'만큼 절절한 영화는 드물 듯하다. 이 영화는 최근 나온 가족용 영화 '동승'(감독 주경중) '보리울의 여름'(감독 이민용) '선생 김봉두'(감독 장규성) 등과 함께 추천할만한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의 산하를 과장되지 않게 그린 배경 속에 다섯 살 길손이, 앞 못 보는 열 두살 누나 감이 남매의 엄마 찾기 여정을 슬프게 그렸다.
이들 남매는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났다가 숲 속에서 산 짐승을 만나고 물살 센 계곡을 만나 어머니 찾기의 어려움을 깨닫는다. 숲에서 우연히 설정 스님을 만난 뒤 절로 따라가 절밥을 먹게 된다. 길손은 법회를 하는 스님들 고무신을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거나, 목욕 나온 스님 옷을 노루에 입히는 등 야단법석을 부린다.
그러나 길손의 마음 속에 드리운 외로움의 그늘은 한 없이 깊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간다. 길손이는 누나 감이에게 '엄마는 맨날 누나 꿈에만 나타나고 내 꿈에는 한 번도 안 와'라고 투덜거린다.
길손은 설정 스님이 '마음의 눈을 뜨는 공부'를 하러 간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져 설정 스님의 동안거 길에 스님과 함께 나선다. 마음의 눈으로라도 어머니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폭설이 내리는 아침, 장을 다녀 오겠다던 스님은 길을 떠난 뒤 소식이 없고 폭설로 모든 소식이 끊긴다. 길손은 폐가가 된 암자 오세암에서 홀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스님을 기다리지만 스님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오래된 절의 단청 등 설악산의 색채를 되살리려 애쓴 애니메이션 '오세암'은 과장되지 않은,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아이의 시냇물처럼 맑은 시심이 기특하고, 눈길을 걷다가 지친 나머지 '나 굴러갈래' 하며 눈길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길손의 동심이 웃음을 자아낸다. 길손은 요즘 아이답지 않게 주옥 같은 말들만 해댄다. '바다는 하늘처럼 생긴 물'이며 '바람은 손자국, 발자국만 보인다'. 아이의 언어가 아름답기는 해도 조금 고색 창연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눈 먼 누나의 한 없이 착한 심성도 옛날 동화책을 읽는 듯하다. 누나를 동네 아이들이 괴롭히는 장면은 눈시울이 절로 붉어지는 대목이지만, 청승맞게 느껴진다.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심으로 승화시킨 마지막 장면은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정채봉씨는 설악산 백담사에서 마등령으로 가는 길목의 암자가 오세암으로 불린 사연을 동화로 옮겼고 그것이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졌다. 감독은 '하얀마음 백구'의 성백엽. 윤도현과 이소은이 주제곡 '마음을 다해 부르면'을 불렀다. 전체 관람가. 25일 개봉.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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