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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장애인, 소수자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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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장애인, 소수자의 표상

입력
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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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은 부활절이기도 했다. 예수가 현세의 짧고 불우했던 삶을 통해 자신의 동류에게 건네고자 한 전언은 사랑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명민한 나사렛 청년이 꿈꾸었던 사랑의 공동체는 그가 영생의 세계로 건너간 지 두 천년이 지나도록 실현될 낌새가 없다. 그것의 무망(無望)은 너무 또렷해, 인류의 생물체적 조건이나 진화 단계에 책임을 돌리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예수가 뜻한 바의 사랑을 베풀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서로 존중할 수는 있을 것이다.자신과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을 존중하기는 쉽다. 어려운 일은 자신과 다르게 보이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파에게는 존중이라는 재화가 넉넉히 공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신체적 불리를 지닌 사람들 곧 장애인은 역사의 전시대를 통해 가장 도드라진 소수자였다.

그러나 소수파를 대하는 다수파의 태도가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나 똑 같았던 것은 아니다. 소수자에 대한 존중의 공급은 인류사의 진척에 따라 점점 늘어왔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어떤 진보를 겪었다면, 그 진보의 큰 표징 가운데 하나는 소수자에 대한 존중의 확대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스칸디나비아인과 한국인은, 소수파에 대한 다수파의 태도를 놓고 보면, 전혀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종일 비가 내렸던 지난 20일 서울 대학로에서 장애차별철폐결의대회를 연 장애인들은 장애인 노동권과 이동권 보장, 장애학생 의무교육 실시 등 열한 가지 사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이 거론한 법적·제도적 수준의 반(反)인도적 공백은 하루 빨리 메워야 한다.

사실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발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 나라의 거리에 '사지 멀쩡한' 사람들만 오가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드물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불비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지상 도로에 건널목을 만들지 않은 채 지하로 낸 통로들은 신체적 소수파에 대한 다수파의 냉담과 지하 상가를 둘러싼 상혼이 버무려져 빚은 추악한 정경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소수자 존중의 첫걸음일 뿐이다. 그 존중의 완성은 다수파의 마음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장애인을 보는 비장애인의 눈길이 차가운 한,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장애인들만이 아니라 비장애인들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선 누구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단지 눈에 띄는 외모를, '규격'에서 벗어난 신체 조건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집단주의 정서는 비장애인들에게도 상서롭지 않다. 이런 차별과 배제의 실천을 통해 비장애인들은 주류적 결속을 다지겠지만, 그런 허울 좋은 결속의 안쪽에서 그들은 늘 공포에 시달릴 것이다. 어느 순간 사고를 당하거나 고약한 병에 걸려 갑자기 자신이 남과 '달라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 말이다.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사고를 최소화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다. 그러나 더 좋은 사회는 그런 신체적 불리가 고스란히 사회적 불리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다.

비장애인들이 제 마음 속에서 차별 의식을 걷어내야 하는 것은 이런 '보험적' 이유에서만도 아니다. 더 큰 이유는 동류에 대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예의가 이 행성에 사는 생물체의 정점에 있는 인류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는 데 있을 터이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존중하는 것, 최소한 장애인들을 '선의의 무심'으로 대하는 것은 모든 소수자들에 대한 존중의 출발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의 신체적 소수자들이 놓인 조건은 이주노동자나 혼혈인이나 동성애자 같은 여타의 사회적 소수자들이 놓인 조건을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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