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스타메이커]중앙대 체육부장 정봉섭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스타메이커]중앙대 체육부장 정봉섭

입력
2003.04.24 00:00
0 0

2002∼2003 프로농구에서 극적으로 우승한 TG 엑써스의 선수는 38세의 노장 허재와 양경민 김승기 신종석, 그리고 허재의 14년 후배인 김주성 등 그의 제자 일색이었다. 챔피언 결정전 동안 허재는 경기가 끝나면 매일 옛 스승에게 전화를 했다.하지만 "몸 관리 잘 하고 우승하면 좋겠다" 는 외에 긴 말을 해주지는 못했다. 바로 전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TG에 져 의기소침한 LG의 제자(강동희 조우현 정종선 송영진 표필상)들이 마음에 걸리고, 챔피언전 상대인 동양팀 역시 남 같지 않은 사이이기 때문. 그래서 플레이오프 들어 한번도 경기장에 못가고 내내 TV로 중계를 보았다.

허재는 대학 4년간 특별관리대상이었다. 유명한 술독에 개성까지 강해 항상 조마조마한데다 그만 확실히 잡으면 다른 선수들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허재에 대한 기합은 호될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은 허재가 언론에 뜨면서 개인플레이가 많아지는 것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방으로 따로 불러 혼을 내려는데 마침 '환상적인 허재 드리블'이란 제목이 대문짝만한 신문이 문밑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잘됐다 싶어 신문을 들고 질책하기 시작했다.

"네가 김유택보다 리바운드를 잘 하냐?, 이충희 보다 슛이 정확하냐?, 강동희보다 드리블이 좋으냐?, 한 가지도 최고인 게 없는데 어떻게 네가 최고선수냐?" 물론 허재가 최고의 선수임을 인정하면서도 자만을 걱정해서였다. 더구나 '대회중에 여학생들과 술 마셨다' '사인을 해 달랬더니 사인지를 농구화로 밟았다' '숨겨 논 아이가 있다'는 등 그에 대한 헛소문과 모략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많은 제자중 한기범의 성공사례를 가장 재밌어 한다. 한기범은 후배로부터 천안에 2m 가까운 중3 꺽다리가 있다는 얘길 듣고 달려가 인연을 맺은 선수. 대학에 들어와서도 혼자 걷다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만큼 균형이 안 잡히고, 말도 입안에서만 우물우물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기범입니다" 를 외치며 운동장을 돌게 하고, 가슴을 쭉 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벌을 내렸다. 설렁탕에 뱀탕을 몰래 섞어 먹이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운동은 끝이다'며 강제로 식사량도 늘렸다. 나중에는 누가 안봐도 젓가락으로 먹어야 할 음식까지 숟가락으로 떠먹을 만큼 순진한 사람이 한기범이었다. 요즘 한기범이 TV광고와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것을 보면 배꼽을 잡게 된다.

그는 서울상고(현 경기상고)에서 170㎝가 안 되는 작은 키로 3년간 농구를 했으나 사실상 선배들의 볼보이나 다름없었다. 졸업 후 두차례 재수 끝에 교사의 꿈을 갖고 65년 중앙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그러면서 1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상명여중 동명여중 동덕여중의 코치를 할 만큼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았고 67년 중앙대 농구팀이 창단하면서 매니저를 맡았다. 69년 경성고 교사로 들어가서는 중·고 농구팀을 창단, 신동찬(금호생명 감독) 이성원(전 삼성)을 데리고 3개월만에 중등부 준우승을 이뤘다.

또 진효준(전 코리아텐더 감독)을 키워 고등부에서도 1년 내 4강에 든 후 팀해체로 명지고로 옮겼고, 78년 1월 신탁은행을 맡아서는 전패팀을 3개월만에 춘계연맹전 결승에 진출시키는 등 1년간 4차례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다가 다음해 중앙대가 서울대에도 져 꼴찌를 하면서 다시 모교에 불려 간 것.

그는 누가 무명선수 출신이란 걸 꼬집어 "어떻게 선수들을 가르치느냐" 고 물으면 "소리 안 나는 총(주먹)이 있잖냐" 며 오기를 보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반복훈련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선수들이 응용능력을 갖게 하는 게 비결이다.

"난 3류 선수 출신이다. 내가 가르치는 것만 따라하면 4류선수 밖에 안된다" 며 수시로 선수들끼리 토론하고 돌아가면서 1일 코치를 맡도록 했다. 선수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면 24시간 훈련에 들어간다. "잠을 하루 세시간 자고 공부해도 대학을 떨어지는데 너희는 잠 다 자고 대학에 들어와 신문 방송에 이름도 나니 얼마나 행복하냐. 밤새워 공부하는 게 어떤건지 우리도 밤샘 훈련으로 느껴보자." 그러면 곧 쓰러질 듯이 고통스럽다가도 새벽의 클라이막스에 다시 전날 시작할 때의 힘이 솟는 걸 보고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선수들에게는 자기의 능력에 대해 믿음을 갖게 하는 좋은 경험이다.

그의 선수들에게는 5가지 금기사항이 있다. 음주와 흡연, 이성에 대한 배신, 불효, 유흥장 출입이다.

금주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우승 축하연때 맥주로 건배를 해도 절대 마시지는 못하게 한다. 담배도 몇 대 피워서 큰 일 나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에 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할 만큼 자제력이 부족하면 선수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를 사귀다가 변심해 상처를 주는 것, 부모의 속을 썩이는 것은 인간의 기본을 어긴 것으로 여긴다. 유흥장에 드나들면 돈이 필요해 거짓말을 하고 비겁해 지기 때문에 아예 습관을 들이지 못하도록 한다. 그의 팀에는 편모슬하등 가정이 어려운 선수가 많은 게 이색적이다. 헝그리 정신을 이용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나도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가능하면 불우한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뜻" 이라며 강력히 부인한다.

'정봉섭'이라면 지난 20년간 농구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인물로 꼽혔다. 별이 4개이다. '욱' 하는 성격 때문에 폭력도 잦아 4차례에 걸쳐 거의 8년을 자격정지 또는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코트를 떠나 있어야 했던 것.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이 주원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거친 행동이 잘못 된 것이지만 학연 지연에다가 검은 돈거래까지 겹쳐서 발생하는 고의적인 오심들을 억울해서 참을 수 없었다는 게 그의 변이다.

지금은 대한농구협회 부회장과 대학농구연맹 회장을 맡아 말썽이 생기면 수습하느라 땀 흘리는 처지로 바뀌었다. 또 허재가 20년 동안 코트를 누비는 것을 보고는 "우리 농구선수들의 수준이 그동안 후퇴했다는 반증이 아니냐" 며 안타까워하는 입장이다.

"프로경기에는 외국용병이 2명씩이나 뛰니 한팀에 국내선수는 5,6명 정도만 있으면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특급선수가 아니면 기껏 프로에 가도 1∼2년 있으면 퇴출될 것이라며 대학에서도 열심히 안 하는 현상이 생기죠."

그는 요즘에는 용병들을 없애야 한다며 프로농구와 싸우고 있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프로필

1943년 서울생

중앙대 체육교육과 졸

경성고, 명지고 교사겸 농구감독

신탁은행 감독

중앙대 감독(1979∼92), 체육부장(92∼현재)

83, 85년 유니버시아드 감독

한국대학농구연맹 회장(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현)

중앙대 출신 주요선수

한기범 천정렬 조동기(전 기아)

강정수(중앙대 감독) 김유택(명지고 감독)

허재 정경호 김승기 양경민 신종석 김주성(TG) 강동희 표필상 조우현 송영진 정종선(LG) 김영만(서울 SK) 홍사붕 이은호(인천 SK) 김희선(삼성) 박지현(동양) 황진원(코리아텐더) 구병두(모비스) 김병천 신동한(SBS)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