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사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추석, 민주당 부대변인이었던 김현미(金賢美·41) 국내언론1비서관을 보고 이렇게 혀를 내둘렀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김 비서관이 남자도 출근하기 꺼려하던 이날 기어코 나와서 노 대통령의 임진각 방문을 수행했기 때문이다.김 비서관은 그런 사람이다. 당 부대변인으로 지난해 4월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나 노 후보 담당 부대변인이 된 후 출장 외박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대선을 몸으로 뛰었다. 그는 "대통령을 따라서 전국을 10바퀴쯤 돌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문당료 출신이다. 25세 때인 1987년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연세대 정외과(81학번)를 졸업한 뒤 형광등 만드는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가 가족에게 들통나자 "월급 받는 직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시 김대중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의 비서실 직원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왔다.
98년 평소 그를 유심히 봐왔던 박선숙 당시 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부터 부대변인직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은 "박선숙 만큼 못할 것이니 아예 시작도 말라"고 말렸다. 매일 신문에 줄을 치며 공부하기를 3개월, 야당탄압을 주장하는 신한국당을 일갈한, '너희가 야당 탄압을 아느냐'는 논평으로 처음 인정 받았다. 이후 계보가 중시되는 민주당에서 '계보 없는 김현미'로, 오직 일 하나로 승부를 본 그는 대변인이 12명이나 바뀐 5년 동안 부대변인으로서 자리를 지켰다.
15년간 정당생활을 하며 많은 정치인을 본 그는 "노 대통령은 달랐다"고 말한다. "정치에 대한 철학과 각론(各論)이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당내 일부 세력이 지지도 하락을 이유로 노 후보를 흔들 때는 오기가 생겼고,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 날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에게 청와대에 들어오며 아픔이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으로 거론됐었으나 "언론과 너무 친해 언론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이유로 낙마한 것이다. 그는 "당시에는 마음이 아프니 몸까지 아파서 일주일 동안 출근을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지난 5년 내내 언론과 싸워왔고 한번도 사사로운 이익을 생각해본 적 없다"며 "언론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야 언론개혁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청춘을 바쳐 만들어냈지만 끝이 좋지 않았던 국민의 정부를 기억한다. 그래서 더욱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을 걱정한다. 그는 "민주세력의 정부는 내 피와 땀이 묻어 있는 내 삶 자체"라며 "노무현 정부도 끝을 지키는 사람이 더 중요한 만큼 어떻게 하면 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전북 정읍 출신인 그는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해서도 "열심히 고민중"이라고만 말한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사진 박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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