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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임 창 "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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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임 창 "땡이"

입력
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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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심지 곧은 소년 '땡이'가 인기를 독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다.196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만화방을 내 집처럼 들락거렸던 세대들에게 '땡이' 만화는 각별하다. 동그란 얼굴에 언제나 위로 제친 모자 창이 얼굴의 반을 가렸고, 크고 동그란 눈망울에 자그마한 코가 얼굴 한가운데 구슬처럼 박혀있는 캐릭터.

고 임창(본명 임종우 林種祐·1923∼1982)선생은 우리 만화사에서 본격적인 할리우드식 '스타시스템'을 도입한 작가로 꼽을 만하다. 근육질 영화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캐릭터를 '미국의 힘'으로 가공해 팬들의 뇌리에 심고 이를 흥행으로 성공시킨 그런 원리다.

땡이는 임 선생이 창작한 50여 타이틀의 시리즈 만화에 빠짐없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순진무구한 명랑 만화의 주인공이 됐다가, 역경을 헤치고 성공하는 소년이 되고, 때로는 검법에 통달한 소년 무사로 등장했다.

그러나 '땡이' 만화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임 선생이 특별히 신경을 썼던 일련의 '교육 만화'에서 찾아야 한다. 찰리 채플린의 눈물겨운 소년 시절과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성장, 세계적 영화인으로 성공한 감동을 만화에 담았고(68년작 '찰리 채플린') 실제로 집에서 길렀던 사냥개의 이야기를 옮긴 '땡이의 사냥기'(64년)와 '땡이의 애견기'(66년), 유명배우의 탄생일화와 영화제작 현장의 자세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렸던 '땡이와 영화감독'(65년)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땡이'가 우리 만화사에서 갖는 또 하나의 의의는 숱한 아류 캐릭터를 낳은 '슈퍼 캐릭터'였다는 점이다. 64년 땡이 만화가 첫 선을 보여 폭발적 인기를 끌자 당시 만화출판사는 앞을 다투어 이름만 빌려주는 이른바 '대명'(貸名) 만화 작가를 내세워 '비슷한 땡이'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들 만화의 전반적 그림체는 물론 등장하는 주인공도 땡이와 흡사했다. 주인공 이름도 '떵이' '땅이'를 비롯해 '청이' '창이'등 한눈에 땡이의 아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땡이'의 전성시대는 10여년 간 지속됐다.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주인공 '까치'의 이미지와 흡사한 '까치머리 아류' 주인공이 우리 만화시장에 마구 쏟아졌던 80년대 중반 이후와 비슷하다.

임선생은 우리 만화사의 한 부분을 화려하게 장식한 주인공이었지만, 작가로서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땡이를 닮은 '곧은 성품'으로 말미암아 출판 만화계의 열악한 창작환경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만화시장은 일부 대형 만화출판사 가 전국의 만화방 공급용 출판만화 유통을 독과점하면서 많은 부작용을 드러냈다. 출판사 사장들은 자금동원력을 앞세워 만화 작가를 고용했고, 심지어는 만화내용에까지 개입하고 창작 분량마저 할당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이때 그는 '땡이 문고'를 설립하고 독과점체제와 맞서 싸웠지만, 힘에 부쳐 끝내 좌절하고 말았다.

좌절과 실의로 70년대 말 절필을 선언했고,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82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순수한 만화 열정은 지금도 '땡이'의 순수한 눈망울로 우리 만화계의 한 켠을 비추고 있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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