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보위가 23일 고영구 변호사를 국정원장에 임명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정치적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정원장 인사청문회는 국회의 임명 동의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어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청문회의 취지나 대(對)국회 관계를 고려할 때 노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는 것은 틀림 없다. 더욱이 야당만 반대했을 경우 청와대로선 정치공세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여당 의원까지 가세함으로써 그만큼 정치적 위력이 커졌다.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은 처음에는 고 내정자에 대해 '불가' 의견을 제시했으나 여야 합의과정에서 대통령의 인사권과 충돌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돼 '부적절'로 절충됐다. 또 국정원 기조실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져 증인으로 채택된 서동만 상지대 교수에 대해서도 고 내정자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불가' 의견을 경과보고서에 부기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법상 국정원장 후보도 아닌, 증인에 대한 평가는 적절치 않다는 반론이 제기돼 고 내정자에 대한 평가 속에 기술적으로 포함시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정보위원들은 청문회에서 보여준 대로 고 내정자의 전문성 결여와 사상·이념적 편향성을 주로 문제 삼았다. 여기에 친북 편향성의 논란을 강하게 불러일으킨 서 교수가 국정원 간부에 기용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집단적 의사'도 작용했다. 대통령 인사권 침해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굳이 서 교수에 대해 불가 의견을 단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원들 대분분이 "친북 좌파 성향의 인물이 국정원을 좌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고 내정자에 대한 '부적절' 평가의 주요 원인이 서 교수에 있음을 내비쳤다. 일부 위원들은 "서 교수 때문에 고 내정자가 고생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날 결정에는 고 내정자가 서 교수와 함께 추진중인 국정원 개혁작업에 대한 정보위원들의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나라당 위원들은 "이념 성향이 의심스러운 인사들이 개혁을 내세워 대북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강하게 갖고 있다. 이와 달리 민주당 위원들은 국정원 인사에서의 '호남소외론'을 우려하고 있는 측면이 엿보인다. 개혁 작업을 위해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 주로 영남 출신 인사들로 짜여진 데다 앞으로 진행될 '인적 청산'에서 호남 출신 직원들이 주대상이 되리라는 국정원 내의 일부 목소리를 민주당 의원들이 의식했다는 관측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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