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의 'SK습격사건' 이후 국내 기업 대주주들이 경영권 방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재를 털어 회사 주식을 직접 시장에서 사들이거나 오너 일가 특수관계인을 통해 지분을 늘리고, 그동안 주가부양 차원에서 접근하던 자사주 매입도 경영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바뀌고 있다. 크레스트증권의 SK(주)지분 매집을 계기로 상호 출자를 통한 지금까지의 경영권 유지 관행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한화는 23일 김승연 회장이 한화유통으로부터 (주)한화 주식 250만주를 매입, 지분율을 12.95%에서 16.29%로 확대했다고 밝혔다. 한화측은 "SK에 대한 크레스트의 지분 매집 사례 등이 발생하면서 최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김 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 계열사간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지주회사체제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중 화성산업·동아백화점 회장도 22일 1만3,180주를 장내 매수해 지분율을 11.21%에서 11.31%로 늘렸다. 권혁홍 신대양제지 사장도 21일 주식 2.53%를 사들여 33.48%의 지분을 확보했으며 본인 외에 특수관계인을 통해 우호지분을 65.77%에서 68.94%로 확대했다. 빙그레는 김호연 회장의 부인이 최근 회사 주식 13만여주(1.34%)를 매입, 김 회장과 부인의 지분율은 모두 합해 30.51%에서 31.85%로 높아졌다. 회사측은 김 회장 부인의 지분 매입에 대해 "회사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다소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경영권 안정을 위한 매입"이라고 밝혔다.
경영권 강화를 위한 지분 매입 추세는 코스닥 기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달에만 27개사 대주주가 지분매입을 공시했다. 김상희 영실업 사장은 최근 자사주식 21만8,769주를 자기자금으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사장의 지분율은 종전보다 12.72%늘어난 25%로 확대됐으며, 특수관계인 2인을 포함한 지분은 26.17%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도 최근에는 경영권 안정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올들어 1조원(보통주 310만주)의 자사주를 사들였던 삼성전자가 자사주 추가 매입·소각을 검토하는데 대해 증권 전문가들은 '주가안정'보다는 '지배력 강화'에 목적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주주 지분정보 제공업체인 미디어에퀴터블은 "삼성그룹이 정부의 재벌정책 등으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다"며 "이 회장의 지분(3.18%)과 계열사의 우호지분이 22.36%이지만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지분 6.90%)이 상장되면 이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위협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생명에 대한 이 회장의 지배력이 약화되면 자동적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도 흔들리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현금 배당 대신 대주주 지배력 강화에도 도움이 되는 자사주를 적극 매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일투자증권 김정래 리서치팀장은 "외국인들에게 시장이 완전히 개방됐지만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능력은 미흡한 상태인데다, 주가도 비교적 싼 편이어서 앞으로도 대주주들의 지분 취득과 자사주 매입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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