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날씨는 참 좋다. 누가 아프리카 한복판에 있는 나라가 1년 내내 섭씨 18∼30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내가 살고 있는 수도 나이로비도 해발 1,600m에 위치하고 있어 고산 기후와 비슷하다. 물론 고도가 낮은 지역은 덥다."더운 곳에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서울 본사의 직원들이 이곳의 내 남편과 통화할 때마다 건네는 인사말이다. 사무실에서 가디건을 입고 이런 전화를 받는 남편은 이곳 부임 초기 "여기 날씨 좋다"고 답했으나 이제는 사람들의 선입관, 고정 관념에 지쳐 그냥 "네…" 하고 대답한다.
기온이 일정하므로 케냐에는 꽃이 많다. 꽃 값이 서울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나는 집안을 마음껏 꽃으로 장식해 기분을 낸다. 물론 도시 전체에도 꽃나무가 많다. 재작년 8월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벚꽃 같은 보라색 자카란타를 비롯해 갓난아기 얼굴만한 빨간 꽃, 노란 꽃이 어우러진 나무들은 다듬어져 있지 않아도 눈을 즐겁게 한다. 나무와 꽃 위로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퍼질 때면 신의 존재를 느낄 정도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케냐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남편 발령 얘기가 나왔을 때 이 영화가 의사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지의 세계에서 지금까지 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은 대자연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현실은 도착하는 첫날부터 영화와도, 아름다운 자연과도 달랐다.
케냐의 도로는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설되어 30년 넘게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기저기 패인 곳 투성이다. 늘어나는 중고 자동차들 때문에 매연이 심각하다. 물가는 서울의 비싼 동네 수준 이상으로, 외국인들이 살기에는 너무 높다. 치안도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 대낮에도 안심하고 시내를 걸어 다니기 힘들다. 항상 차에서 차로 이동하고 차문을 잠그는 것은 기본이다. 시장에 갈 때 목걸이를 하는 것조차 위험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쾌적하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생활을 불편 불안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 현재 케냐의 두 모습이다. 외국인이지만 케냐의 양면을 지켜보면서 정치의 안정과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케냐는 지금 변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즈음에 이곳에서는 장기집권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패했던 모이 전대통령이 물러나고 키바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케냐를 아끼는 사람들 모두 새로운 정권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나 역시도.
유 은 숙 케냐 대우인터내셔널 나이로비지사장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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