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음악의 세계에 들어갈수록 인간에 대한 갈증이 깊어 갔다. 학교를 그만 둔 1998년 그 해, 다시 그룹을 만든 것이 그래서였다. 헤어보았다. 무려 16년만에 갖는 나의 밴드였다. 무엇보다, 가르치다 보니 이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린 결단이었다. 그룹 결성이 알려지자 언론은 국내는 물론 세계 최고령 로커라는 호칭을 달아주긴 했지만, 나로서는 그 동안 음으로 양으로 왜곡돼 왔던 내 본연의 모습을 사회에 알리고 싶은 생각이 더 절실했다.허무와 은둔의 느낌이 강했던 '세 나그네'와는 다른 나의 밴드 '신중현 그룹'이 빛을 본 것이다. 당시 나로서는 '신중현은 끝났다, 무능력자다'라는 등 내 귓전을 간지럽혀 온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자는 마음이 더 절실했다. 그룹 재결성은 교편을 잡으면서도 내내 생각해 왔던 문제다.
모처럼의 그룹 활동을 위해, 나는 우선 한달 동안 우드스탁에서 거의 두문불출 하다시피 하며 준비 작업에 들어 갔다. 노래와 연주 등 개인 연습은 물론, 편곡과 무대 구상 작업까지 모두 혼자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로 작업실에 틀어 박혀 있다 갑갑해지면 인근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고 왔다. 혼자였지만 85년, '록 월드'가 망하고 나서 외톨이가 됐던 심정과는 사뭇 달랐다. 그 당시는 얼마나 공허했던가. 이듬해 냈던 앨범 '겨울 공원'의 타이틀곡 가사에 그 같은 사실이 에누리 없이 드러나 있다. '우뚝 솟은 나무에 앙상한 가지는/찬 바람이 스쳐 간 자욱인가요/차디 찬 겨울 공원엔 아무도 없구나.' 방배동 생활을 접고 황량한 문정동에 왔을 때의 심정이 꼭 그러했다. 나는 기타를 없애버리려 했다. 기타를 무지막지하게 톱으로 써는 모습의 그림이 담긴 앨범 자켓이 내 심정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기타를 없애 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심정을 그림으로 그려, 나는 또 다른 발언을 하고 싶었던 것이랄까. 마침 클럽 우드스탁을 수리하고 있을 때여서 스산한 내부 풍경이 나의 황량한 마음과 오버랩 됐던 것 같다.
그러나 바로 그 문정동에서 나는 다시 일어 설 힘을 얻었다. 차가운 겨울 공원이 아닌, 제법 맑은 공기가 있는 서울 외곽 따스한 동네 공원에 바람 쐬러 종종 나가며 나는 세상과 다시 손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과 조금씩 면을 트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처음에는 건반(최수경), 드럼(유상원), 베이스(김성수), 리듬 기타(최경희) 등 후배 네 명을 모아 5인조로 출발했다. 1기를 거쳐 2기까지 온 '신중현 그룹'은 제법 많은 분량을 비축해 두고 있다. 우드스탁에서 녹음한 것, 콘서트 '너희가 록을 아느냐' 라이브, 앨범 '김삿갓' 녹음, 옛 히트곡 녹음, 새 작곡분 등을 합치면 CD로 얼추 넉장 분량을 확보한 상태다.
우리의 첫 무대는 김삿갓의 고향 영월에서 98년 9월 열린 '김삿갓 축제'였다. 그의 이름을 딴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된 강원도 영월군청의 문화공보과장이 먼저 문정동까지 찾아 왔던 것이다. 김병연(김삿갓)의 묘소앞에서 앨범의 수록곡 그대로 연주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멀리 강원도에서, 그것도 공무원이 그 음반 발표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직전 KBS-TV에서 방영된 '일요 스페셜'이 원인이었다. 한때 세상을 풍미하다 10년이 넘도록 모습을 감쪽같이 감추었으니, 신설 프로에서 한 번 크게 다룰만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당시 나는 취재팀의 요청으로 전라도에서 강원도까지 경개 좋다는 곳은 다 돌아 다니며 내 근황을 전했다. 그 무렵 MBC-TV도 '나의 인생, 나의 음악'이란 교양 프로에서 나를 조명하는 프로를 방영했으니, 10년 넘는 잠적의 예기치 못 한 결과였던 셈이다. 당시 영월군청은 방송 매체의 여파를 몰아 그 무대를 크게 키워 볼 생각이었던지, 내가 제시했던 적잖은 예산을 선선히 받아 들이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속으로 놀랄 지경이었다. 국악연주단과 함께 펼쳤던 40여분간의 야외 공연 이후 그 일대는 아예 '김삿갓 계곡'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그룹은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일로 깨지고 말았다. 영월 공연을 펼친 지 4개월 뒤에 벌어졌던 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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