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人情)이란 말이 있다. 좋은 말이다. 인정 있는 사람이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다. 인정 있는 사람이 많은 사회, 그래서 인정이 넘치는 사회란 정말 좋은 사회가 아니겠는가.그런데 인정에는 이와는 사뭇 다른 뜻도 있다. 뇌물, 혹은 부당하게 징수하는 돈이란 뜻이다. 왜 인정에 이런 뜻이 생겨나게 되었던가? 인정은 처음에는 사람의 정이 담긴 사소한 선물이란 의미였다. 이것이 마침내는 사소하지 않은 뇌물이란 뜻으로 변질된 것이다. 촌지(寸志)의 의미가 바뀐 것처럼 말이다.
뇌물이란 뜻의 인정은 조선시대에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었다. '인정을 쓴다'는 것은 뇌물로 돈을 준다는 뜻이었다. 인정전(人情錢)이니 인정채(人情債)니 하는 말은 모두 벼슬아치들에게 무언가를 바라며 바치는 돈을 말한다.
조선은 관료 사회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관료들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사회란 말이다. 당시 모든 이의 이상은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입신양명이란 곧 고위관료가 되어 유명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정작 조선시대의 관료들이 받는 봉록(俸祿)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며, 또 품위를 유지한단 말인가?
유력한 해결 방도가 있었다. 바로 부정과 뇌물이었다. 벼슬을 파는 것은 예사다. 이 외에도 좀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중앙 관서의 하급 공무원인 서리는 대개 한양 큰 양반가의 청지기 출신이다. 서리 역시 국가의 공무원이었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을 선발하는 공식적인 과정이 없었다. 곧 큰 양반가의 청지기가 아니면 돈과 권세가 있는 관청의 서리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서리와 양반관료는 불가분의 유착관계가 된다. 서리는 온갖 방법으로 정부의 재정을 갉아먹었다. 조선은 서리 때문에 망한다 할 정도로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 서리의 폐해를 논했지만, 서리의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서리의 부정적 수입을 양반들이 같이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신문을 보니 지난 정권의 고위직을 지낸 어떤 분과 현 정권의 실세라는 분들이 깨끗하지 않은 돈에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게 그분들만의 일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권력이 있는 자리라면 부정은 이미 구조화되어 있을 것이다. 부정과 부패에 있어서 만은 우리는 지금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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