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년 견백년(紙千年 絹百年)이라 했습니다. 비단이 백 년을 견딘다면 종이는 천 년을 이깁니다. 질긴 한지만큼 제 그림의 질감을 드러내는 데 좋은 재료는 없는 것 같아요."화가 백원선씨가 '카르마(KARMA)―球(구)' 전을 23∼29일 인사아트센터에서 연다. 1994년 아이들 다 키우고 늦깎이로 화단에 나왔지만 열두 번 개인전을 열 정도로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백씨는 서양화를 전공했으면서도 한지와 먹을 고집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그렇게 먹의 그윽한 느낌과 서양화적 조형성이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과 안정감을 함께 준다.
백씨의 작품 자체도 이중 구조로 돼 있다. 서양화 붓으로 툭툭 찍어 발라 먹 흘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밑그림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반복되는 원형을 오려낸 흰 종이를 겹쳐 올린다. '구―초충도(草蟲圖)' 같은 작품에서는 살아 꿈틀대는 듯한 안쪽의 풍경과, 원형과 격자로 구분된 밖의 형식이 내밀하게 조응한다. 캔버스에 면을 씌우고 먹물로 힘있고도 부드럽게 터치한 '구―소리' 는 마치 커다란 북소리처럼 둔중하고도 긴 울림을 주는 한국적 추상화면이다. 채색 그림 바탕에 한지를 올려 자디잘게 조각을 오려낸 '카르마―구 0341'은 우리 어머니들의 옛 모시적삼처럼 단아하고도 섬세한 느낌을 준다.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즉흥적이면서도 질서에 통어되는 완성도, 은밀한 내면이 창 밖으로 내비치는듯한 비밀스런 정서가 화면에 짙은 여운으로 남는다"고 평한다. (02)736―1020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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