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30여년 전 도시 경관 정비와 환경 보전을 위해 서울·수도권 및 전국 13개 도시에 설정된 녹지대다. 하지만 해당 주민들은 집도 새로 못 짓고 알토란 같은 개발에서 소외되는 등 재산권 행사의 제한을 받았다. 그린벨트 주민들의 해제 목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전남 담양군 고서면 분향2리 용대마을에 지난해 그린벨트 해제라는 '인생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법도 한데 주민들은 마을 회의까지 열어 그린벨트를 지켜냈다. "거꾸로 가는 마을"이라는 주위의 삿대질도 원(願) 없이 받았다.
산바람 들내음에 젖어 사는 촌로들은 세상 물정 모른다고 답답해 하는 사람들에게 되물었다. "아따 돈도 좋고 개발도 좋지라. 근디 이웃끼리 철마다 푸성귀 캐먹는 맛은 아실란가."
"땅값이 뛴다고 인정이 오르겄소."
용대마을 뒷산 삼봉(三峰)은 고운 연두 빛 기지개가 한창이었다. 광주시내에서 10분이면 닿는, 광주 댐에서 50m 남짓 거리를 두고 웅크린 마을. 담홍색 영산홍과 연분홍색 철쭉이 곱게 핀 동네 어귀에서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너댓 명의 할머니들이, 초를 얹자면 아이 이불보만한 땅뙈기와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들여다봤더니 자갈밭인지 논인지 구분이 안간다. 곁을 좀 달랄 겸 '힘드시겠다'며 챙긴 인사가 궁색해 뵈는 첫인상을 에두른 것으로 들렸을까. 한 할머니는 "이래봬도 땅 고르고 물 대주면 옥토"라고 했다.
그린벨트 얘기를 꺼냈다. "머시기, 그른가토? 고것이 머시여." 김오님(72) 할머니의 느닷없는 대답에 주위는 박장대소.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최양금(68) 할머니. "형님, 아따 안 있소. 개발 못하게 꽉 묶어 논거. 우리 마을은 한참 전에 거시기(그린벨트 유지)하기로 했는디."
"남정네들 일이라 내막은 몰라도 잘 했지라. 막말로 평생을 땅 파 묵고 살았는디 이녁(내) 땅값 몇 푼 오르면 머한다요. 인심만 고약해지고 외지 사람들만 좋지라." 아까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김 할머니가 호미를 쉴새 없이 흔들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오살나게 모텔만 들어슬텐디 동네 망가져불고 몸만 피곤한께." "암, 돈 몇 푼보다 맴 편한 게 제일이여." 함께 있던 중년 부인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 허물어져가는 마을회관 스피커가 회의를 소집한 것은 지난해 10월께. 광주권 그린벨트 1,540만평이 단계적으로 해제, 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부터. 입에 풀칠하기 바빠 들녘으로, 외지로 떠돌던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갑론을박하기를 무려 5차례. 순박한 촌로들의 결론은 세상 계산법과는 다른 '그린벨트 고수'였다. 환경보존이니 전원주택이니 거창한 계획보다 "조상 대대로 오순도순 정겹게 살던 마을을 지키자"는 까닭에서였다.
당장 담양군에 이의신청을 내고 법 없이도 살았을 주민들이 행정소송까지 준비했다고 했다. 다행히 12월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서 제외됐다. "해제 면적이 군 전체 4.98㎢ 중 4만5,000㎡로 미미해 받아들인 것"이라는 군 관계자의 설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민들은 "전국에서 처음이여, 우리가 똘똘 뭉친 결과"라고 자랑했다.
정작 박판주(58) 이장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알고 보면 그린벨트란 것이 옴짝달싹 못하게 꽉 묶어 논 것이 아니랑게. 새로 짓는 건 쪼까 힘들어도 수리는 할 수 있응게."
곳곳에 흉가, 마을은 살려야 목소리도
28가구 50여명이 산다는 마을은 적요했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자리에 덕지덕지 세월의 더께가 앉은 집들은 그나마 나은 편. 창과 문짝이 떨어지고 잡초가 무성한 집도 더러 눈에 띄었다. "외지 사람들이 사논 집이여라." 이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빈집이 생기기 시작한 건 광주가 광역시가 되던 10여년 전부터. "담양 어디어디가 광주로 편입된다는 소문이 요란했응께라." 이장의 설명이다. 외지 사람들이 한몫 잡아보려는 심보로 사놓고 살지 않아 흉가가 된 집이 무려 7채라고 했다. 마을 앞 1,500평 감나무 밭도 감이 아니라 돈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3년째 내팽개쳐진 신세다. "욕도 많이 들어 묵었단께." 이장이 전하는 빈집 주인들의 항변은 이랬다. "가만 있으면 될 일을 다된 밥에 코 빠뜨렸다." "지들 땅만 땅이여, 애써 투자한 우리 손해는 누가 보상할껴."
그린벨트가 풀리는 인근 마을의 시샘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조목조목 옳은 말씀인께 (용대만) 봉 됐지라. 우리는 돈 밝히는 속물이 되부렀고…." 용대마을로 품을 팔러 온 잣정마을 주민이 씁쓸하게 속삭였다. 한 택시기사도 "코딱지만한 동네 개발되면 얼마나 된다고 콱 틀어막고 있는지 모르겄다"고 말했다.
용대마을 주민들 가운데에도 다른 속내를 털어 놓기도 했다. "나 죽으믄 새끼들이 여그 살라하겄소. 땅값이라도 올라야…." "거시기 풀리면 귀신 나올 것 같은 흉가도 없애고 꾀죄죄한 마을도 살릴 텐디 인자 답이 안 나와부요." 마을회의엔 나가지 않았다는 한 할머니가 애써 태연한 척 했다.
10년을 살았다는 한 중년 내외는 "주민들이 대놓고 속내를 밝히지 못한 것은 마을이 겪었던 고통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댐을 두고 한 말이었다. 댐이 없던 30년 전만 해도 고서(면)에서 알아주는 부자 동네여서 주민만도 200명이 넘었다고 했다. 박갑인(80) 할아버지는 "땡푼 받아 논밭 물에 가라앉혔는디 사람이고 돈이고 금새 사라져불드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개발의 '개'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친다고 했다. 속내를 누르고 그린벨트를 고수한 주민들의 머리 속엔 복잡한 실 타래가 얽혀 있었다.
"인자 물 펑펑 나온께."
그린벨트 해제는 물 건너 갔지만 용대마을 사람들은 요즘 희망에 들떠 있다. 그린벨트 내 지원사업 덕에 마을 숙원 사업이던 상하수도 시설이 생겼기 때문. 댐이 들어서면서 지하수가 고갈돼 마실 물이 귀하던 차였다. "겨울에는 리어카로 물 퍼 나르고 여름엔 빗물 받아 묵었는디 얼매나 좋으요." 박일주(58)씨는 "인자 물 펑펑 나온께 떠난 사람, 빈집 주인들 모두 와 살았으면 좋겄다"고 했다.
자전거 마실 나온 한 노인이 숨 한번 들이켜라고 했다. "번쩍번쩍 으리으리한 건물은 도시에 안 많소. 시골은 시골다워야 한께, 아기자기한 시골인심하고 맑은 공기는 여그 허벌(엄청)나브러."
/담양=글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 그린벨트 지키기 운동
주민들의 그린벨트 지키기 운동은 지난해 7월 경기 군포 부곡지구와 의왕 청계지구 주민들이 해제 반대청원을 건설교통부와 국회, 경기도 등에 낸 것이 처음이다. 2개월 뒤 경기 시흥 능곡지구 주민들도 동참했다. 당시 그린벨트 해제 반대 청원에 나선 주민들은 부곡 89%, 청계 83%, 능곡 67%에 달했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30여 년 동안 엄격한 개발행위 규제로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 왔으나 보상은 고사하고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땅에서 내몰리게 됐다"며 "택지개발을 명분으로 한 그린벨트 해제를 절대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린벨트 해제 공방은 이들 3개 지역 주민들이 9월 말 택지개발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의 위법성을 들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 법정공방으로 이어졌지만 법원은 지난 3월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사정은 다르지만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해 경기 용인 죽전지구 주민들은 2000년 대지산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10만 서명운동과 함께 그린벨트 지정 주민 청원을 냈다. 주민들은 택지개발계획승인 취소소송에서 패소하자 '나무 위 시위' 등으로 맞서 결국 2001년 5월 건교부가 대지산 일대 6만2,000여 평을 개발유보지로 지정했다.
/고찬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