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아침은 늦다. 해가 뜬지 한참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둡다. 그리고 조용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걸 두고 '고요'라고 하는가 보다.햇살이 나뭇잎을 들추고 숲 안쪽을 비추면 고요가 깨진다. "딱딱딱딱…." 요란스럽게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 딱따구리다. 이 소리를 신호로 숲의 아침이 일제히 시작됐다. 새들이 울고, 청솔모인지 다람쥐인지 무엇인가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며 분주히 돌아다닌다. 눈을 감고 귀에 신경을 집중한다. '숲의 아침은 참 건강하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축령산은 야트막한 산이다. 웬만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 작은 산이 세상에 알려진 이유는 산을 두르고 있는 건강한 숲 때문이다. 삼나무와 편백, 그리고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숲을 배경으로 영화 '태백산맥' '내마음의 풍금', 드라마 '왕초'가 촬영됐다.
축령산의 숲은 자연이 만든 숲이 아니다.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완전히 헐벗었던 산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이는 독립운동가인 춘원 임종국씨. 1956년부터 시작된 육림의지는 그가 세상을 떠난 1987년까지 계속됐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90만평의 숲이 조성됐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울창한 숲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회고한다.
축령산의 나무는 모두 허우대가 좋다. 일부러 하늘을 향해 쭉쭉 뻗는 나무를 골라 심었다. 편백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삼나무이다. 둘이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쉽지 않다. 나뭇잎이 부챗살처럼 생긴 것이 편백, 뭉친 것이 삼나무이다. 간혹 낙엽송이 눈에 띈다. 거의 노란색에 가까운 새 잎을 달고 있다. 햇살을 받으면 금조각처럼 반짝거린다. 고급가구를 만들거나 통나무집을 짓는데 쓰일 만큼 좋은 목재여서 인기가 높다.
숲 속에 길이 나 있다. 나무를 심어나르기 위한 임도이다. 북일면 문암리와 서삼면 모암마을을 연결한다. 총 연장 6㎞. 완만한 경사의 비포장길이다. 차가 다닐 수 있지만 걷는 것이 좋다. 2시간30분이면 주파할 수 있다. 걷는 이유는 삼림욕을 하기 위해서다. 축령산의 나무들은 특히 피톤치드(긴장을 완화하고 항균력이 뛰어난 방향성 물질)를 많이 발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번 걷고 나면 웬만한 기침감기는 뚝이다.
길의 중간 지점에 만들어진 휴식공간에는 시골학교 운동장만한 평지와 지붕을 씌워놓은 우물이 있다. 검은 고무통으로 만든 두레박이 정겹다. 이 곳까지 와 잠시 쉬다가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장성의 유명한 관광지는 두 곳. 천년 고찰 백양사와 맑은 물빛의 장성호이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세워졌다. 대한 조계종 18교구의 본사이기도 한 큰 절이다. 백양사의 으뜸 명물은 단풍이다. '애기단풍'이라 불리는, 잎이 작은 종류이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빛을 자랑한다. 그래서 단풍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단풍나무의 잎은 가을 뿐 아니라 봄에도 아름답다. 고사리 손처럼 앙증맞다. 입구에서 절에 이르는 2㎞의 길 양쪽으로 단풍나무가 새 잎을 피우고 있다.
장성호는 1976년에 완성된 호수. 황룡강의 상류를 막아서 만들었다. 4개 시·군의 농토를 적시는 큰 인공호인데 최근들어 수상 레포츠의 천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수상스키, 카누 등이 맑은 물 위에서 펼쳐진다.
무엇보다 인기있는 레저는 낚시.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류 수초대를 중심으로 봄 물낚시가 시작됐다.
호수는 모내기철을 기다리며 만수 상태이다. 물가의 버드나무가 반쯤 물에 잠겼다. 물 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파랗게 봄을 빨아올리고 있다.
/장성=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편하다. 톨게이트에서 우회전, 굴다리 밑으로 직진해 장성 방향 모현리 4거리까지 간다. 약 6㎞. 고창쪽으로 우회전, 898번 지방도로를 타고 개천교를 지나 금곡마을 입구까지 4.4㎞. 금곡영화마을이란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 2㎞ 정도 올라가면 마을 입구다. 마을 뒷산이 축령산이다. 서울에서 장성까지 하루 3편 고속버스가 다닌다. 장성읍에서 금곡마을까지는 하루 4차례 군내버스가 왕복한다. 장성터미널 (061)393-2660.
반대편 모암리 쪽의 길은 복잡하다. 장성읍에서 황룡강을 넘으면 오른쪽으로 추암마을로 향하는 길이 나 있다. 소로이지만 점점 넓어진다. 도중에 길이 많이 갈라지지만 '추암관광농원'이라는 이정표를 계속 따라가면 축령산에 닿는다. 장성군청 (061)393-1989.
묵을 곳
축령산 근처에는 정식 숙박시설이 없다. 농원과 찻집 등에서 민박을 친다. 모암리의 추암관광농원(061-394-4600)과 백련동(393-7077) 등이 숲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 장성읍내엔 여관이 많다. 한양모텔(392-7001), 조선비치(392-4714), 파레스(393-2615), 그린모텔(393-3211), 진흥각(393-3703) 등이 비교적 시설이 좋은 장급 여관이다. 백양사 앞에도 여관이 많다. 백양관광호텔(392-0651)이 가장 크다. 금강여관(392-7766), 백운각(392-7531), 백양산장(392-7500) 등도 제법 규모가 있는 여관이다.
먹거리
장성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메기 요리. 특히 찜이 맛있다. 자연산 메기에 23가지의 양념을 넣고 찐다. 향긋한 흙내음이 매력적이다. 1994년 남도음식 대축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명하식당(061-393-3618), 연전식당(392-4502), 신광식당(393-3615), 초야식당(393-0734) 등이 유명하다. 백양사 먹거리촌의 산채를 빼놓을 수 없다. 백운각식당(392-7531), 정읍식당(392-7427), 산장식당(392-7500), 남원식당(392-7557), 나주식당(392-7608) 등 10여 개의 산채식당이 늘어서 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반찬이 나온다. 남도의 후한 인심에 구경만 해도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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