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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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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아름다운 여행의 추억이 있습니다. 평양을 거쳐 백두산으로, 다시 백두산에서 묘향산으로 갔던 여행입니다. 꿈 속에서 가봤냐고요? 실화입니다. 2000년 가을 남북 교차관광이 시도됐습니다. 선발대로 남쪽에서100명이 먼저 백두산을 방문하고, 이후 북쪽에서 100명이 한라산을 여행할계획이었습니다. 남쪽의 백두산 방문은 이루어졌는데, 이후 일이 꼬이면서북측의 한라산 여행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운 좋게도 남측 관광단에 끼어 백두산에 갈 수 있었습니다.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에서 개마고원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습니다.

1년에 20일 정도 밖에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천지에도 내려갔습니다. 거울 같이 맑은 물가에 자리를 펴고 두만강에서 잡았다는 산천어로 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들쭉술이 한 순배 돌아가니 정말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취재에 참가했던 모든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말했습니다. “이제 평생 여행을 못한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요.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백두산의 숲입니다. 백두산의 나무는 거의 낙엽송입니다. 현지에서는 이깔나무라고 부릅니다. 가을이면 ‘잎을 간다’는 ‘입갈’의 발음이 변했습니다. 이깔나무의 잎은 노랗게 물들어 낙엽이 됩니다.

때는 10월. 백두산 둔덕은 온통 황금빛 세상이었습니다. 완전히 원시의 숲입니다. 길 바깥으로는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역시 백두산이야!’ 모두 감탄했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자연림이 아니라 인공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습니다. 일제의 남벌로 백두산의 숲은 완전히 망가졌다고 합니다. 새 나무를 심고 철저하게 관리한 결과, 백두산 원시의 숲은 살아났습니다.

장성 축령산에서 백두산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규모는 비교할 수 없지만남쪽에도 이런 인공림이 있다는 게 뿌듯했습니다. 공터에서 끓여 먹으려고라면과 취사도구를 챙겼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숲의 모습에 ‘아서라, 불낼라’라는 마음이 앞서 배낭을 열지도 않았습니다. 쫄쫄 굶었지만 행복했습니다.

행복감에 취해 넋을 잃고 앉았는데 환영이 보였습니다. 백두산이었습니다. 이깔나무숲이 황금바늘 같은 낙엽을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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