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부는 술에 취해 철도에 드러누워 자다가 그대로 기차에 깔렸다. 어머니는 자식의 옥살이가 한스러운 나머지 대문고리에 목을 맸다. 큰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저수지 둑 아래로 굴러 떨어져 잠들어 버렸다. 의부는 간경화로 배에 복수가 가득 차서 눈을 감았다. 하나같이 비명횡사 아니면 병사로 천수(天壽)와는 거리가 먼 가족을 둔 것이, 소설이라고 해도 잔인하고 황당한 설정이다. 송기원(56)씨의 삶이 그렇다. 그의 인생이 소설 같으니, 삶의 체험을 적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소설이 된다.그가 소설집 '사람의 향기'(창작과비평사 발행)를 새로 냈다. '인도로 간 예수'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네 번째 작품집이다. 그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작품을 1인칭 화법으로 썼으며 그것은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언제 어느 장소에서나 소설 속의 주인공은 나였으며, 주변 인물은 애오라지 나의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필요한 조연 내지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조연과 엑스트라를 자기 앞으로 불러왔다. 울보 유생이, 바보 막둥이, 끝순이 누님, 폰개 성(판기 형), 양순이 누님 같은 전남 보성군 조성면 태생의 실제 인물들이 소설의 주인공이 됐다.
동네 악동들은 막둥이 이름 앞에 '바보'를 넣어 불렀다. 막둥이 아버지는 해방 무렵 좌익 물이 든 뒤 여순반란사건을 못 넘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정신이 모자란 대신 허우대가 우람하고 힘이 장사였다. "금수만도 못한 놈, 아제가 뭐여? 나는 작은 할애비여"라며 사정없이 휘두르는 할아버지의 회초리에도 날파리 쫓듯 등판을 쓰윽 훑을 뿐이었다. 어찌어찌 결혼을 했는데, 색시는 아이를 낳다가 죽어버렸다. 어디선가 비렁뱅이 신세가 되었다는 막둥이를 30년 만에 노숙자 수용소에서 만났다. 맨발로 햇볕을 쬐고 있는 얼굴은 해처럼 환하게 빛났다. 막둥이의 얼굴에는 가슴을 쥐면서 자신을 키운 어머니, 먼저 간 색시, 사흘도 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아이의 삶이 녹아 있었다. "자신의 안으로 내려간 누군가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밑바닥에 이르러 마침내 이루어낸 평화 그 자체"였다.
'바보 막둥이'의 좀 모자라지만 순한 삶은, 소설이 질박한 사람 이야기를 적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따뜻한 감동을 전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동네 사람한테 겁탈을 당하고 아이를 낳게 된 앞 못보는 '끝순이 누님'이나, 소설가 사촌동생이 데모하다 경찰서에 끌려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달려온 정 많은 '폰개 성' 이야기에도 배어 있는, 따뜻한 사람 냄새다.
왜 이웃의 이야기로 눈을 넓혔을까. 소설의 한 부분에서 작가는 이렇게 적는다. "대저 문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살아낸 삶의 쓰라림과 막막함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사람의 고통과 쓰라림과 막막함으로까지 그 외연을 넓혀가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결국은 나와 다른 사람이 다 함께 동류의식을 갖는 일이 아닌가." 정직하게 말하고, 정직하게 쓰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어느 것도 따르지 못하는, 마음을 울리는 힘이다. 송기원씨의 소설이 가진 바로 그 힘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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