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북·미·중 회담을 시작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본궤도에 오른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관련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었다.그 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권유지수단이란 해석이 주목 받았다.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한 이래 생존전략 차원에서 핵 보유정책에 박차를 가했다는 분석이다.
내부적으로는 세계 최강인 미국을 주적으로 설정, 핵무기로 당당히 맞서는 모양새를 갖춰 북한주민과 군을 묶는 효과도 계산했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다 테러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응징정책으로 위기감을 느낀 북한이 체제유지 등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벼랑 끝 외교 (Brinksmanship)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핵 문제는 대결이 아니라 협상에서 풀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아직도 냉전의 틀에 빠져있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1인 세습체제 국가이다. 여기에 자존심이 강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이론, 유교사상까지 합쳐져 매우 독특하다. 취약한 경제적 자립기반을 상쇄하기 위해 무기 등을 수출해 사는 생존게임을 숙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 북한이 벌이는 벼랑 끝 외교의 내면을 이해할 단서들이다.
그러면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이며 향후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우선순위는 테러 집단 및 국가를 응징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북한 미사일 등이 테러집단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미국은 동북아의 지역안보와 관련해서도 미국중심의 구도를 원하고 있다. 향후 미국은 북핵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상틀을 철저히 자국중심으로 진행하려 할 것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이라크 해법에서 보듯 독자행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미국의 공화당정권 시절 한미관계는 대체로 좋았다. 역대 공화당 정권은 우방인 한국정부를 두둔했고 경제지원도 민주당정권보다 많이 했다. 부시 행정부도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관계가 순항하면 북한의 핵 협상도 순조로울 전망이다. 중국 역시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의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조용한 가운데 북한에 핵 포기를 강력히 권유할 것이다. 미국 또한 대중·대일관계를 고려해 동북아에서의 지역갈등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 민주당 정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부시 행정부가 결코 북한을 응징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의회 내 북한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이라크처럼 아랍 국가들의 지원 같은 걸 기대하기 힘들다. 중국과 러시아가 있긴 하지만 이라크사태에서 보듯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강대국의 거부권은 국제관계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벼랑 끝 외교가 제대로 먹혀 들지 않고 있는 이상 하루 빨리 협상테이블로 나오는 게 좋다. 미국을 상대로 잘 협상한다면 역설적으로 민주당 정권에서보다 더 많을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내년에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있는 만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부시 대통령의 국내 입지를 살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면서 정권보호라는 최대 현안을 해결할 기회까지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현 종 민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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