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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왕성한 집필… 책 43권 펴낸 박홍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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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왕성한 집필… 책 43권 펴낸 박홍규 교수

입력
200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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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법대 박홍규(51) 교수는 르네상스적 문화인이다. 국립도서관에 따르면 그가 낸 책은 41권. 그러나 대형서점에서 팔리는 책 가운데는 국립도서관에조차 납본되지 않은 책이 있어서 이를 종합해보니 그가 지금까지 펴낸 책은 43권에 이른다. 이 가운데 29권이 저서, 14권이 번역서이다. 그의 관심사는 전공인 법학부터 예술, 교육학까지 전방위로 뻗어있다. 책의 날(23)을 맞으며 이 왕성한 필자를 만나러 대구로 내려갔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 이반 일리히의 최초 소개자였고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을 뭉뚱그려 생각하는 서구인의 몰이해를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 '오리엔탈리즘'을 처음 번역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대표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을 이끌어낸 이론가였고, 배심원제 도입을 10년전에 이미 주창했다. 또한 개인의 권리를 극대화하고 정부의 권한을 최소화하자는 한국아나키즘학회의 회장이다. 그의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또다른 책을 쓰고 있었다. '반전과 평화를 위한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이미 책을 낸 스페인 화가 고야('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는 물론이고 독일 반전작가 케테 콜비츠 등의 작품을 두루 소개할 예정이다.

―강의는 언제하고 책을 쓰는가.

"고맙게도 1주일에 9시간만 강의를 하면 된다. '노동법'과 '법과 예술'을 강의한다. 보통 오전 8시 이전에 연구실에 오는데 해질 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전공이외의 영역에서 글을 더 많이 쓰는 이유가 무언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 알려졌어도 잘못 알려진 사람을 소개하려고 한다. 루쉰을 민족주의자로 소개하는데, 루쉰만큼 민족주의를 비판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자유인 루쉰'을 냈다. 노동화가이자 아나키스트인 고흐를 광기의 주인공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내친구 빈센트'를 냈다. 영국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모리스, 스페인의 교육혁명가 프란시스코 페레('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등은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아 냈다. 페레의 평전은 세계적으로도 처음 나온 것이 아닐까 싶은데…(웃음). 나도 처음에는 전공 영역에서 책을 냈다. 지금이야 우리가 국제노동기구(ILO)에도 가입했지만 1919년 ILO 창립 이래 국제적 기준으로 존재하는 ILO 노동기준이 국내서는 내가 창원대 교수로 있던 80년대 중반까지도 법학교재에조차 언급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85년에 '세계의 최저노동기준'이라는 스위스 법학자 니콜라스 발티코스의 책을 번역한 것이 첫 책이다. 그후 학교해방론자이자 의료 교육 사법제도로부터의 해방을 주창한 가톨릭 신부 이반 일리히를 소개했다.(그가 번역한 책으로는 87년 '병원이 병을 만든다', 88년 '그림자 노동', 90년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89∼90년 하버드대 인권연구소 객원교수로 가있을 때 발견하고 서울대 영문과 교수에게 번역을 제안했지만 하지 않아서 직접 했다. 중요한 저작이라 대형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답장조차 없었다. 우리나라는 대형출판사들이 너무 돈되는 출판에만 관심이 있다. 강원대 이광래(불문과) 교수의 소개로 교보문고에서 책이 나왔다.

사이드를 계기로 전공이 아닌 것도 섭렵하게 됐다. 전공서적도 내 주장이 워낙 소수설이라 출판이 힘들 때가 많다. '법은 무죄인가'는 유명무실한 국선변호인제도, 노동자를 억압하는 노동관계법 등 우리나라 법체계의 문제점을 비판한 것인데 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97년)까지 받았다. 상을 받은 것을 빌미로 정말 내고 싶었던 모리스('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를 출판사에 내달라고 했다. '시민이 재판을!'은 배심원제도를 적극 도입하자는 주장을 담은 것인데, 다른 나라는 이미 100년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도 우리나라는 너무 오래 망설인다. 그것이 무슨 논리가 있어서도 아니고 일제때 생겨난 법체계의 오류를 바로 잡으려는 열의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고흐가 아나키스트였다고까지 하는 것은 무리 아닌가.

"고흐가 고갱을 데려와 아를에서 산 것은 그냥 고갱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고흐는 베르나르나 피사르, 보나르 등 당대화가를 다 불러들여 아나키즘적 예술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 고흐는 자신의 사상을 동생인 테오에게 편지로 상세히 일러주었는데 이 편지를 보면 다 나온다. 국내서는 편지의 일부만 소개되어 있어서 전체를 번역하고 작품도 소개하는 책을 10권짜리 전집으로 구상하고 있다. 내년에 네덜란드에 가서 1년 정도 공부한 뒤 원전을 번역할 생각이다."

―왜 예술가에 빠져있는가.(그는 '비바 오페라' '오노레 도미에'도 냈다.)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국가보다 개인을 더 중시한다. 아나키즘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예술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고 본다. 내가 쓴 평전은 위인들이 주인공이지만 이들이 위대한 인물이라서 쓰는 것은 아니다. 모리스는 화가이자 디자이너였지만 평생 마누라에게 배신을 당한 불쌍한 사람이었다. 예술가들은 삶 자체가 우습고 자유분방하다 싶을 정도로 구속을 거부했던 사람들이라 끌린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결국은 아나키즘을 알리는 작업인가.

"솔직히 아나키즘에 대한 확신은 없다. 민족주의자나 자유주의자가 아닌 자유인이라는 개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성장하면서 우리 사회가 굉장히 국가주의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서 아나키즘을 들이댄 것이다. 자유 자치 자연 삼자주의라고 말하는데 우리 사회가 좀더 자유롭고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한다."

―논문은 쓰지 않는가.

"일본에서 조사해보니 교수의 논문을 읽는 사람이 2.4명이라고 한다. 교수와 조교와 그리고 0.4명. 우리는 학자 평가에서 논문을 너무 중요시한다. 외국은 평전이 박사학위도 되고, 번역도 평가해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연구지원금을 받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책으로 내면 전문가들의 반응이 없다.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에서 헌법학자들을, '베토벤 평전'에서는 음악가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학계의 고질적인 폐쇄주의가 답답하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박홍규 교수는 새 정부 출범후 창립멤버로 있던 대구의 대구사회연구소와 참여사회연구소를 탈퇴했다. 대구사회연구소는 윤덕홍 교육부총리, 권기홍 노동부장관,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이종오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 등을 배출, 노무현 정부의 싱크탱크라는 평을 받아왔다. 이들과 진보적인 생각을 공유해온 박 교수가 양 연구소를 탈퇴한 것이 지난 달 교수신문 보도로 알려지자 보수적인 어느 신문사에서는 발빠르게 심경고백조의 원고를 청탁하기도 했다. 그가 보수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나 박 교수는 "생각이 바뀐 것은 없으며 지식인이라면 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교수들이 너도 나도 정부에 가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보기 싫었다"고 말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진보적이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는 "흔히들 정책을 보고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내가 보기엔 '권력주체의 체질'이 참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책을 진보적으로 제시해도 권력주체의 체질이 독선적이면 결코 진보적인 정부가 될 수 없다고. 히틀러나 박정희도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웠지만 지도자의 철학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영도자주의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결국에는 독재정권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가 이전의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틀림없지만 국가주의, 대통령중심주의, 영도자주의적인 특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진보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요즘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주의적 체질을 자주 발견한다. 말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도 정부가 비대해지고 있다. 청와대 규모가 커졌고 장관급 직제도 늘어났다. 또한 참여와 분권을 이야기하는데 실제 정책에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남대만 해도, 대통령의 결단으로 청남대를 개방키로 했다는 사실만 부각되는데, 청남대가 지방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해서 생겨난 것인만큼 청남대를 돌려주기로 결정하면 그 후의 처리 문제는 원소유주였던 지방민들의 의견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진보를 표방할 뿐 국가주의를 강화한 것 아니냐고 그는 묻는다. 한 달전 그는 사법연수원에 초청받아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방안을 강연했다. 그러고보면 새 정부 들어 소수의 소리를 듣는 장치는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새정부가 국가주의를 강화할 것인지 박 교수 시각의 진보로 나아갈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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