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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회 만들기]<2> 평양의 이 선생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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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회 만들기]<2> 평양의 이 선생께

입력
200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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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동강가에도 신록이 푸르겠지요. 그리고 이 선생도 무고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평양에서 만난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군요. 제대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에서 대학 선생 노릇을 한다던 사람을 아예 잊지야 않으셨겠지요.사실 저는 북쪽에 아무런 연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방북하기 이전에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 같은 것이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실제 평양 체류 내내 어느 정도 그러기도 했지요. 그러나 셋째 날인가 육아원의 애들을 보고는 몹시 둔한 저같은 사람도 아린 마음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아주 짐작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또 다르더군요. 한참 어려울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는데도, 애들 얼굴에서 여의치 않은 영양사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남쪽 애들과는 사뭇 달랐으니까요. 나중에 물어보니 다른 사람도 그랬다니 제 혼자 느낌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건 아마 이 선생도 아시는 이야기일테지요. 유니세프가 조사한 북쪽 어린이들 영양상태 말입니다. 저는 평양을 다녀 온 직후에 언론 보도를 보고야 조사결과를 알게 되었답니다. 또 한번 마음이 영 좋질 않았지요. 제가 본 육아원 애들이 오히려 좀 나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조사로는 열 명에 넷 이상은 발육부진과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다, 일곱 살이 안 되는 어린이의 21%가 저체중이라지요. 칠만 명이 넘는 애들이 심각한 영양실조 때문에 생명조차 위험할지 모른다니, 차마 말을 더 잇기 어렵군요.

이 선생, 남이나 북이나 애들이 사회의 희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애들이 건강해야 민족이 산다는 것도 그런 이유일 테지요. 그런데 이대로 두면 큰 일 나겠습니다. 애 들의 영양이 이럴진대, 얘들이 커서 키도 얼굴도 달라 서로 다른 '민족'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설마 이걸 원하는 사람이야 없겠지요. 그러니, 우선 애들부터 살립시다.

이라크 다음은 어디니 해서 그 곳 정세가 몹시 '긴장된' 것 잘 압니다. 그래도 이게 더 급합니다. 같이 살기 위해서라도 애들 먹이는 것을 우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쪽도 마찬가집니다. 비록 능력이랄 것은 없지만, 저 역시 이 곳에서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바로 곁의 친구, 친지라도 설득해 보아야지요. 식량 배분의 투명성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애들을 살려 놓고 따지자고 할 참입니다.

이 선생, 상황은 그대로인데 요즘 지원이 더 줄어든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더라도 다들 애들의 건강을 위해서 더 애써 주십시오. 그래야 또 만날 때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드러진 꽃으로 봄이 한창인 것은 남북이 마찬가지겠지요. 이 좋은 계절에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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