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증권분야 집단소송제와 관련, 정치권이 소송대상 기업을 총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서 모든 상장·등록기업으로 확대키로 함에 따라 코스닥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회계 관행이나 시장 특성상 코스닥 기업들이 분식회계나 주가조작에 휘말릴 우려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은 최근 금융 감독기관이 주가조작, 분식회계, 허위공시 등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 집단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되, 소송대상 기업을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서 모든 상장·등록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임태희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은 "소송대상을 구별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김효석 민주당 제2정조위원장도 "소송 남발을 우려해 분식회계가 빈번한 중소기업을 제외한다면 집단소송제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도 환영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금융감독원의 감리 결과를 분석해 보면, 1998년부터 2001년 8월까지 분식회계로 적발된 185개 기업 중 자산 2조원 이상은 16개(8.7%)에 불과했다"며 "이들 기업만 소송대상으로 제한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고 밝혔다.
현행 정부안은 주가조작인 경우 모든 공개기업이 소송대상이지만, 분식회계와 허위공시는 자산 2조원 이상 공개기업에 대해서만 소송을 낼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수정안이 채택될 경우 소송대상 기업은 현재 78개(자산 2조원 이상)에서 1,540개(거래소 681개, 코스닥 859개)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코스닥 등록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에 당혹해 하며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경우 2001년 11월 이후 1년 4개월 동안 분식회계 혐의로 매매 정지됐던 기업이 21개나 됐다.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 자네트시스템 등 4개 기업이 비용항목 조정 등 분식회계로 시정조치를 받았고, 올해에도 엔터원이 대손충당금 미계상 등으로 제재를 받았다.
회계자료의 신뢰성이 비교적 높은 거래소 상장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0년까지 감리를 받은 1,544개 기업 가운데 35%인 540개가 분식회계로 적발됐다. 국내 기업 3개 중 1개 꼴로 크고 작은 분식회계를 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분식회계 기업은 물론 회계사와 주간 증권사도 소송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분식회계 관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경우 자체 법무팀 등 별도 조직을 갖추고 있어 집단소송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거의 무방비 상태여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 정진교 조사연구팀장은 "코스닥 등록기업 대부분이 중소규모 벤처기업이어서 집단소송 내용의 진위여부를 떠나 소송 제기 자체만으로도 기업 존립이 흔들리게 된다"며 "곧장 모든 상장·등록기업으로 확대할 경우 도산 기업이 속출하고 가뜩이나 위축된 코스닥시장과 벤처업계의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김호섭기자 dre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