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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을 적시는 "희망의 샘물" 3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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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을 적시는 "희망의 샘물" 3년째

입력
200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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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걸어온 길2001년 8월1일 발송된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첫 회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魯迅)의 '고향'에서 인용한 이 글귀에 고도원(51)씨는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라는 붙임글을 썼다.

일부러 사람들이 컴퓨터를 비교적 덜 쓰는 여름 휴가철에, 고씨는 조심스럽게 친지들에게 이 메일을 띄웠다. 그것도 '시험용'이라며 '원치 않으시는 분은 삭제하시라'는 꼬리표를 달고서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그때부터 벌어졌다. 입소문을 통해, 혹은 '추천'을 통해 1,000여 명 남짓하던 아침편지의 '식구'는 2만, 5만, 10만, 20만, 70만 명을 넘어 21개월 만인 22일 현재는 81만 4,696명으로 늘어났다. 인터넷사이트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www.godowon.com)'의 누적 방문자 수도 454만 850명에 달한다. 그가 말한 희망의 길은 그대로 실현됐다.

고씨에게는 "아름다운 혁명가, 당신이 있어 참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국내 네티즌, "외국 땅에서 홀로 살면서 내 생일 기억하며 쓸쓸히 지내지 않고, 이제 부모님께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어요"라는 해외 동포의 답장 메일이 쏟아졌다. 자비로 메일 전송 시스템을 구축했던 고씨는 아침편지 식구들이 20만 명을 넘어서자 몇 차례 서버를 늘려야만 했다. "아침지기(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함께 지키고 키우는 등대지기)를 비롯한 아침편지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도와주어 서버를 강화하고 트래픽을 늘렸다"고 고씨는 말했다.

"실의에 빠져있던 어느날 돌아가신 아버님의 책장을 뒤적이다가 아버님이 그어놓은 빨간 밑줄을 발견했다. 문장의 의미가 둔탁한 무기로 얻어맞은 듯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고씨가 아침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그것이었다. 좋은 책의 좋은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로부터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이르기까지, 노자 '도덕경'에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까지, 고씨가 인용해 들려주는 글의 폭은 참으로 넓다. 그 다양한 책에서 그는 1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한 문장을 뽑고, 우리 일상에 바로 와 닿는 쉽고 편안한 촌평으로 마무리한다. 그는 아침편지를 '산 속의 옹달샘'에 비유한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슬프고 절망할 때, 사랑을 잃었거나 꿈과 희망이 필요할 때, 한 모금 마시는 것만으로도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맑고 청량한 샘물." 그의 편지가 자칫 값싼 감상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절실함 때문이다. 고래로 수많은 아포리즘이 있어 왔지만 이메일과 편지라는 형식을 결합해 단기간에 그만한 독자를 얻은 것은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처음일 것이다. 최근 문철우 이화여대 교수는 '감성상품'으로서의 그의 편지에 관한 학술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편지가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식구가 늘어 운영에 힘이 들 즈음에 홈페이지에 배너 광고를 하겠다는 기업, 아예 콘텐츠를 통째로 넘겨받아 운영하겠다는 재벌의 유혹도 있었지만 고씨는 모두 거절했다. 고씨는 다른 매체의 수많은 제의를 제쳐두고 한국일보 지면에 아침편지를 연재하기로 한 것도 바로 "한국일보의 '중립성과 뚝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영혼을 적시는 감성의 물방울 한 방울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바람은 없다"고 말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 고도원은 누구

80만이 넘는 아침편지의 식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고도원씨가 '부지런한 이웃'이라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그를 만나자마자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3 때까지, 두 살 아래 여학생을 짝사랑했지요. 제 고향에서는 유명한 이야깁니다, 집사람도 다 알구요(웃음). 중학교 들어가서 연애편지 쓰려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등을 노트에 적어놓기 시작했지요. 바로 그게 아침편지의 시작일 겁니다."

고씨는 제주도가 고향으로 전북 지역에서 17개 교회를 개척한 열성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사를 지망, 대학에서는 신학을 전공으로 택했지만 그는 학교신문 '연세춘추' 편집국으로 등교하면서 신문에 빠졌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인용하기만 해도 필화를 겪던 유신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됐다. "아무리 연애편지 많이 써도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아침편지에 담긴 절실함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입대, 졸업 후 취직도 안 됐던 그는 대학축제 파트너였던 부인과 결혼해 서울 아현동 고개에 웨딩드레스 가게를 열었다. "결혼 적령기였던 친구들이 도와줘서 장사는 잘 됐지요." 78년 '뿌리깊은 나무' 기자로 그는 언론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중앙일보에서 사회부, 정치부를 거쳤고 정치부 차장을 끝으로 언론계 생활을 마감했다. 기자 시절을 회상하며 쓴 한 글에서 그는 "사건 기자로 뛰어다니느라 새벽에 귀가하는 게 다반사였다. 착하기만 했던 아내가 어느날 '언제 내 몸에 손댄 적이 있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적기도 했다. 그만큼 부지런한 기자였다. 연애할 때 그가 부인에게 보냈던 시 '라졸의 사랑 노래'는 아침편지에도 소개됐다. 이 시를 "평생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는다는 고씨의 부인은 8년째 삼겹살 집을 하며(최근 불이 나서 샤브샤브집으로 바뀌었다) 그를 도왔다.

기자시절 방송에 출연해 신문 브리핑을 하면서 짧은 독서 여록을 함께 들려준 것이 아침편지의 바탕이 됐다. 이후 그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발탁돼 5년을 일했다.

/하종오기자

약력

1952년 전북 출생 71년 연세대 신학과 입학 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 제적·입대, 80년 졸업 78년 '뿌리깊은 나무' 기자 83년 중앙일보 기자 92년 미국미주리대 언론대학원 연수 98년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넘치지 않는 그릇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최인호의 '상도(商道) 4' 중에서 ―

소설 속의 계영배(戒盈盃) 술잔을 설명하는 한 대목입니다. 이 계영배는 술잔의 7부까지만 채워야 됩니다. 그 이상을 부으면 이미 부은 술마저도 사라져 버리는 신비로운 그릇입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사랑도 그릇의 7부까지만 채우고 그 이상은 절제하거나 양보하는 삶의 태도, 바로 거기에 참된 행복과 성공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2003년 3월20일>

두세 곱절 더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 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 중에서 ―

안철수 님이,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에서 읽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두세 곱절 더! 실천이 중요합니다. 당장 오늘부터 30분 일찍, 아니 1시간 일찍 출근(등교)하십시오. 그것을 매일매일의 철칙으로 삼고 습관화하십시오. 그것만으로 실천은 시작되었으며,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입니다. <2003년 3월21일>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시간은 빨리 흐른다. 특히 행복한 시간은 아무도 붙잡을 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중에서 ―

행복한 시간만 빨리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불행한 시간, 고통의 시간도 지나고 보면 순간입니다. <2003년 3월 28일>

가장 아름다운 것

건축 자재가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게 하라. 자연스러운 재료를 쓰려는 계획을 망설이지 말고 짜라. 나무에 페인트를 칠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 나무가 얼룩지게 놔 두라. 나무, 석고, 벽돌, 돌의 자연스러움이 드러나도록 계획을 세우라. 왜냐하면 이것들은 본래부터 친근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중에서 ―

꾸미고 덧칠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자칫 본래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본연의 모습 속에 숨겨진 잠재력을 어떻게 잘 찾아내어 얼마나 갈고 닦느냐가 중요합니다. <2003년 4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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