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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49) 컴퓨터와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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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49) 컴퓨터와 인간성

입력
200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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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란 단지 악기 소리를 내는 것만은 아니다. 연주 행위라는 것은 악기와 인간의 신체 사이에 일어나는 일종의 화학 반응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감정은 물론 영혼까지도 함께 악기를 통해 표출된다. 나는 로커다. 당대의 가장 선진적 기술을 나의 록에 담아 왔고, 또 계속 그럴 것이다. 그것은 이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에도 변함 없는 원칙이다.그러나 컴퓨터 뮤직은 한 곡 안에 같은 톤으로 들어 있어야 할 감정과 영혼을 파트별로 시간을 나누어 따로 연주한 다음, 그것들을 종합해 낸 것이다. 결국은 하나의 총체적 감정과 영혼이 이리저리 흩어져 약화되고 만다는 말이다. 처음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맨 처음 컴퓨터 뮤직에 빠져 든 것은 혼자서도 밴드와 맞먹는 음악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여러 사람과 같이 연주하는 데서 숱하게 겪었던 감정적·인간적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현실적으로는 샘플링이나 믹싱 등 여러 분야에서의 작업을 원활하게 해 준다는 강점도 있다.

컴퓨터란 것이 기록성 하나는 탁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영혼 또는 인간의 내면까지는 기록할 수는 없다. 이 같은 깨달음 이후, 컴퓨터는 악보를 그리고 저장해 두는 데에만 사용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그린 악보가 갖는, 살아 있는 느낌이 없어져 허전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언젠가는 나의 친필 악보집을 하나 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다.

외국의 컴퓨터 음악이 아무리 발전한 것이라 한들, 사람의 작업 결과를 기계가 스스로 읽어 내서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나는 언젠가 컴퓨터에 도(道)의 힘을 불어 넣을 생각이다. 그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록이다. 록이란 원래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내가 그 동안 숱하게 경험한 인간들에 대한 회의가 짙게 깔려 있다. 여러 사람을 히트 가수로 만들었지만, 결국 그들은 나를 빌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컴퓨터에는 자아나 감정이 없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영혼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다는 데서 큰 가능성과 매력을 느꼈다.

1997년 발매했던 더블 앨범 '김삿갓'이 컴퓨터를 부려 만든 첫 작품이다. '금강산' 등 김삿갓이 지은 시나 '요강' 등 생활하면서 써둔 가사 19편에다 내가 새로 지은 선율을 달았다. 작업은 철저히 컴퓨터 기법이었다. 속도나 강약 등 연주에 관한 세부 사항을 내가 지정해 입력시키면, 컴퓨터가 각종 악기 소리를 디지털 샘플러(음원)에서 조합해 낸다. 조선 시대의 묵객에게서 받은 영감이 나를 통해 첨단으로 연결됐다.

예를 들어 베이스 드럼은 오전 10시에, 스네어(심벌즈)는 오후 3시에, 노래는 오후 7시에 각각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해 두는 방식이다. 97년 나름대로 야심을 갖고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발표했던 이 음반은 얼마 후 모두 거둬 들였다. 컴퓨터 음악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음악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야 하겠다고 판단했고, 더 완벽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 한계란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각각 다른 시간대에서 연주된 악기 소리가 똑 같을 수는 없다. 이 점은 컴퓨터 뮤직 최대의 약점이다. 아침의 노래를 저녁의 연주와 합칠 경우, 그 노래에 가장 필요한 감정과 영혼은 분산돼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물러 설 수는 없다. 내 최초의 컴퓨터 음악 작업인 이 앨범은 믹싱 기술 등에서 업그레이드 된 기술을 이용, 새롭게 단장하고 보완해 5월 중이면 같은 음반사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결정적 열쇠인 믹싱 방법은 나만의 노하우로, 극비 사항이다. 만일 내가 공개한다 하더라도 컴퓨터를 완벽하게 다룰 수 없으면 아무 소용 없기 때문에 오해만 살 뿐이라고 믿는다.

그런 작업 방식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왜 오전과 오후의 연주나 감정이 달랐을까? 나는 오랜 컴퓨터 뮤직의 경험으로 문제는 내 정신력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예를 들어 오후에 연주할 경우, 오전에 했던 것을 주의 깊게 들어보고 내면화시켜 작업에 들어가는 식이다. 시간 차에서 생기는 감정과 색깔의 괴리를 최소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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