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영동으로, 영동에서 양수리로 이사왔다. 몸을 옮길 때마다 봄이었다. 봄날이 시인을 부르고 봄물이 시인을 끌었다. 양수리로 와서는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나 양수리로 왔다"고 전화를 걸었다.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사람 그리운 걸 좀 늦게 알고 나서였다. 시인 최하림(64·사진)씨가 산문집 '멀리 보이는 마을'(작가 발행)을 펴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산문 48편은 시인의 삶의 기록이다. 시의 싹을 틔웠던 유년기, 시에 관한 깊은 사색, 전남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쓴 칼럼, 독서일기, 미술 평론 등 다양한 관심사가 한데 엮이었다.문학하는 사람들의 모든 산문은 결국 왜 글을 쓰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탐색이다. 최하림씨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여우로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풍경은 그저 평범한 장면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풍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쓸쓸한 풍경"이 된다. "그 풍경이 갖는 의미 때문에 살고, 글을 쓴다." 그 풍경이 시인을 기다리게 한다. 사랑하게 한다.
시론 '시에 관한 단상'은 견고한 글쓰기다. 시인은 나르시스의 신화에서 시의 운명을 본다. 눈먼 예언자는 나르시스를 보고 "너는 너를 아는 날 죽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나르시스는 샘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자신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한다는 것은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므로 아는 것과 진배없는 것이고, 죽게 된다는 것이다. 샘물에 비친 나르시스의 얼굴처럼 시는 내면의 얼굴이며, 시인은 그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죽음과 얼굴을 맞대고 시를 쓴다. 시력 40년을 앞둔 최하림 시인이 통찰한 시인의 운명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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