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책의 날(23일)은 우울하다. 이라크전의 혼란 속에 바그다드의 이라크 국립도서관, 고문서보관소, 코란 도서관이 약탈과 방화로 파괴된 때문이다.영국 인디펜던트지 보도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바빌론·앗시리아 등의 고대 문명 유산을 간직했던 이라크 국립박물관이 11일 약탈자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데 이어 14일 이라크 국립도서관과 고문서 보관소, 코란 도서관의 귀중한 문헌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오스만 투르크의 역사 자료, 중세 코란 필사본, 이라크 역대 왕조의 문헌 등 옛 기록 뿐만 아니라 1980∼88년 이란―이라크전 관련 이라크 정부 기록, 90년대 초 아랍권 신문들의 마이크로필름 복사본 등도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코란도서관이 화염에 휩싸였다는 제보를 받은 미군은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는데도 30분이 지나도록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바그다드는 762년 압바스 왕조의 2대 칼리프 만수르에 의해 이슬람 제국의 수도로 건설된 이래 약 1,000년 동안 아랍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특히 813∼833년 이슬람 제국을 다스린 칼리프 알 마문은 바그다드에 도서관과 번역사무실, 학교로 이뤄진 대규모 학술센터 '지혜의 관'(館)을 세워 학문을 크게 일으켰다. 이런 전통의 영향으로 전쟁 직전까지도 아랍권의 책은 카이로에서 쓰고 베이루트에서 인쇄해 바그다드에서 읽는다고 할 만큼 바그다드는 책의 중심지였다.
20세기 이전 역사에서 바그다드가 이교도에 함락된 예는 1258년 칭기즈칸의 손자가 이끈 몽골군의 침공이 유일하다. 당시 티그리스 강물이 책 잉크로 검게 물들었다고 한다.
이번 이라크전으로 바그다드의 하늘은 책이 불타는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약탈당한 문화재는 더러 환수할 수 있지만, 타버린 귀중한 서적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됐다.
/오미환기자 m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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