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대상 중 '분식회계' 분야에 대해서만 유예기간을 두자는 수정안을 제기,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금융감독 당국도 기업의 기존 분식회계 관행을 감안, 과거 분식사실에 대해 '고해성사'를 통해 사면을 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집단소송제의 핵심인 분식회계 분야만 유예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집단소송제란 기업의 분식회계와 허위공시, 주가조작, 부실감사 등으로 주식 투자자가 손해를 볼 경우 한 사람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다른 투자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동일한 배상을 받게 하는 제도다.
한나라당은 최근 집단소송법 수정안을 통해 주가조작과 허위공시 등에 대해서는 즉시 집단소송제를 적용하되, 분식회계는 1∼2년간 유예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에서 보듯 과거의 분식을 털어내지 못한 기업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는 만큼, 1∼2회 정도 회계연도가 지날 때까지 수정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나오연 국회 재경위원장(한나라당)은 "과거부터 누적됐던 분식회계를 당장 소송대상으로 하면 기업경영과 금융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유예기간을 주어 기업들이 과거 분식을 털어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도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김효석 제2정조위원장은 "기업들의 분식회계 고민을 풀어줘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계감독 주무기관인 금융감독원도 '분식회계 유예'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초우량기업인 SK그룹의 분식회계가 적발된 이후 사실상 국내 모든 기업이 회계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집단소송제로 시장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기간 완충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SK사태에 따른 시장혼란을 막기 위해 과거의 회계부실을 고백하는 기업에 대해 면책을 해주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예컨대 분기보고서 등을 통해 기업들이 과거부실을 한꺼번에 떨어낼 경우 분식회계 혐의가 짙어도 특별감리를 사면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소송법이 원안대로 통과돼 모든 기업의 분식회계 혐의가 곧바로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사면 자체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어 고민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분식회계에 대해서만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기업경영의 투명성 강화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은 "다른 종합상사에도 분식회계 가능성이 높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한다"면서도 "유예기간을 둘 경우 우리 기업 전체의 회계 투명성에 대한 불신을 고백하고 조장하는 문제로 비화, 기업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