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레라는 베트남 시인이 있다. 본명은 레지투이다. 소설가,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는 자신이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레라는 필명은 전사한 그의 친구 이름이다. 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친구의 이름을 빌려 조국과 전쟁, 청춘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했다. 호치민 루트를 통해 전선에 투입된 뒤 10년 동안 미국에 대항해 싸웠다. 전쟁이 끝났을 때 입대 동기 300명 중 생존자는 5명이었다.반레의 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이 얼마 전 번역돼 나왔다. 젊은 남녀의 생명과 희망을 무차별적으로 앗아가는 전쟁의 처절함을 증언한 소설이다. 처절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에는 차가움보다는 따스하고 순결한 사랑, 평화의 정서가 깊이 흐르고 있다. 작가의 선한 마음씨 탓일 것이다. 승리로 종전을 맞은 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베트남은 아직도 가난한 나라다.
반레는 방현석의 소설 '존재의 형식'에 등장인물로도 나온다. 한국인이 반레에게 묻는다. "300명의 당신 부대원 중에서 295명이 목숨을 버려가며 이루려고 했던 나라가 바로 이 베트남인가요?" 냉소적 질문에 명료한 답이 따른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굶주리지 않고, 외국의 군대가 베트남의 사람과 대지를 유린하지 않는 세상을 바랐을 뿐이에요."
베트남은 1,000년 동안 식민지배를 받으면서도 중국에 동화하지 않았고 몽고 프랑스 일본 미국의 침략도 차례로 물리친 나라다. 반레의 대답에는 고난 속에 겨레를 지켜온 베트남인의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다짐, 희망 등이 들어 있다.
논란이 무성하던 이라크전은 끝나고 전후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라크인은 독재자 후세인이 망쳐놓은 나라를 재건해야 하고, 미국은 이를 도와야 한다. 미국은 2차 대전 후 황폐해진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재건시킨 위대한 전통이 있다. 마셜 플랜을 세워 독일을 부강한 국가로 성장시켰고, 정치적 연령이 어린애 수준이라는 일본을 민주국가로 유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전통을 이어야 한다. 그러나 회의가 앞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에게서는 인류 이상(理想)의 실현자라는 느낌보다는 증오와 복수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증오는 파괴로 연결될 뿐 생산적 선(善)을 낳지는 못한다.
미국은 강해졌으나 겸손과 위대함의 전통은 잃은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미국은 복수의 군복 대신 평화의 작업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후세인을 미워하더라도 가혹한 체제 아래 순응주의자가 된 국민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1950년대 일련의 군사 쿠데타로 인해 아랍 지역이 독재자들의 손에 들어간 뒤, 그들은 민주주의를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미국은 독재자 축출, 이라크 국민 해방 등의 전쟁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바그다드의 박물관 유물과 도서관 필사본이 약탈 당한 것을 보면, 과연 문화가 제대로 보존되고 민주주의가 실현될지 미덥지 않다. 약탈한 이라크인이나 방조한 미국이 모두 야만스런 작전명 '충격과 공포' 수준에 머무는 듯하다.
세계의 눈길은 석유 이권과 복구공사 쪽으로 재빠르게 옮겨졌다. 그러나 석유에만 각국의 눈길이 모아질 때, 이라크인은 1995년 나이지리아의 투사 켄 사로위와처럼 '석유는 우리의 저주'라고 울부짖게 될 것이다. 경제 불황을 벗어나려는 각국의 절박한 사정은 있겠지만,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의무와 명분이 있다.
베트남인이 그랬듯이, 비록 패전 국민이더라도 이라크인이 최대한 자기운명을 개척하면서 민주 사회를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 미국은 위대성을 회복하느냐, 석유라는 실리와 불명예에 치중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전승 행렬에 동참하는 우리 또한 실리 이상으로 명분에 충실한 방향을 택해야 한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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