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아니었다면 연예인이 됐을지도 모르지요. 어느 쪽이든 하늘이 주신 재능을 노인분들을 섬기는데 쓰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글로리아교회 담임목사인 김대동(47)씨는 요즘 실버세대 사이에서 이병헌이나 송혜교 못지않은 인기스타다.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 주역을 맡은 모노드라마 '김 영감의 독백' 덕분이다. 83세의 김 노인을 내세워 우리사회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이 연극은 노인문제 관련 각종 심포지엄의 단골 공연물이며 비디오로도 제작돼 국내외에서 노인문제 교육용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는 물론 멀리 미국이나 캐나다의 교포사회에까지 김 목사의 이름이 알려졌다. "얼마전 미국 버지니아를 방문했는데 '김영감이 왔다'며 엄청나게 환대하는 거예요. 현지 교회가 이민 1세대인 교포노인들 문제를 다루면서 제 비디오를 보여줘 다들 제 얼굴을 알아보더라구요. 처음엔 어리둥절 했지만 한편 뿌듯했습니다."김 목사의 연극배우 겸업 선언은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패밀리'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가정선교에 열중하던 중 한국노인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계기였다.
주최측이 느닷없이 노인심리에 대한 미니강의를 요청했고 점심시간을 넘기며 계속되는 강의에 지루해할 사람들을 위해 김 목사는 즉석에서 노인흉내를 내며 평소 조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관찰한 노년기의 여러 고민들을 일인극으로 풀어놨다. 어린시절 교회의 성탄극 출연하면서 몸에 붙은 '끼'가 발산됐다. 결과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어느 순간 극에 확 몰입하면서 저와 관객이 하나가되는 거예요. 저도 가슴이 저릿저릿했지만 앞에 앉았던 노인 몇 분은 아예 흐느끼시더라구요. '아, 내게 주어진 조그마한 재능이 이분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데 쓰였구나'싶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일인극이 입소문을 타면서 김 목사는 사목일 외에도 한달이면 두세 차례씩 모노드라마를 공연하느라 바빠졌다. 즉흥연기로 시작한 무대는 노년기 4대 고충으로 꼽히는 건강, 가난, 관계상실, 역할상실을 고루 다룬 짜임새있는 대본극으로 발전했다.
이왕이면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백화점의 한 화장품 코너를 찾아가 분장술도 배웠다. 덕분에 김 목사의 가방에는 성경책과 메이크업 베이스, 파우더, 눈썹연필, 립스틱 등 화장품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있다.
지난 5년간 100회 남짓의 공연을 하다 보니 이제는 무대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체크하고 그에 맞게 극의 길이와 내용을 조금씩 변형할 만큼 노련해졌다. "강남에 사는 노인들은상대적으로 윤택한 만큼 가난과 관련된 부분은 줄여요. 반면 강북에서는 가난과 소외가 노인들의 주요 관심사라 그 부분에 좀 더 시간을 들입니다.
또 '희망가' 같은 노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면 극적인 효과는 더 높아지지요."
연극을 시작하기 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성대모사 같은 개인기를 갈고 닦는데도 신경을 쓴다. 특히 턱을 약간 떨면서 하는 고 이승만대통령의 성대모사는 웬만한 연예인도 혀를 내두를 만큼 쏙 빼 닮았다.
연극을 하면서 노인문제에 더 천착하게 됐다는 김 목사는 지난해에는 서울신학대에서 노인기 죽음 준비교육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앞으로도 연극과 목회활동을 통해 노인들의 상처를 위무하는데 헌신할 계획이다.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그러나 노인이 되기 전에는 누구도 노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하지않아요. 미래의 노인과 현재의 노인이 서로 공감을 나누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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