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한 중소도시로 이민와 살고있는 가정주부입니다. 일본잡지 읽는 것이 취미이신 77세 홀 시어머님은 몇 년 전부터 일년의 반은 서울에서, 그리고 반은 호주 저희 집에 와 계시면서 건강하게 지내셨습니다. 서울의 아파트에는 바로 위층에 역시 홀로 되신 시이모님이 살고계셔서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사셨습니다. 이번에 시어머님도 정식 이민허가가 나 당신 소유의 서울 아파트를 정리하려고 엊그제 모시고 나왔는데, 떠나시기 얼마 전부터 헛구역질에 멍하니 얼빠진 모습을 보이고, 친정동생 여섯과 명문여고 동창들과 어울릴 수 있는 서울이 더 좋다고 하십니다. 서울에는 시누이 둘이 더 삽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서울 신반포 서씨)
효성스럽게 시어머니를 모시려는 댁 부부로서는 쭉 가만히 계시다가 막판에 동요하는 시어머님 때문에 당혹스러우시겠습니다.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현재보다 과거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옛일이 더 잘 생각나며, 친구도 옛 친구들을 더 찾습니다. 입맛도, 일상습관도, 말씨도 어른이 되어 익힌 것보다 어릴 때 것으로 돌아가지요. 특히 자기의 황금시대 것들을 좋아하게 되지요.
또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조용하기보다 시끌벅적한 환경을 더 편하게 여기며, 친형제 자매끼리 서로 기대게 되고 특히 자매간이 제일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쉽게 노여움을 타고, 쉽게 자격지심에 빠지며, 피해의식이 생겨 남을 잘 의심하며, 자기 것을 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초로기 노인은 자식에게 쾌히 재산을 나누어줄 수 있지만 80대 노인은 오히려 준다던 재산을 끼고 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아주 커집니다.
그러한 노인 일반심리로 볼 때, 댁 시어머님께서 계실 곳은 호주 중소도시보다는 서울이 맞으실 것입니다. 집 밖에만 나서면 없는 것이 없는 요란한 세상이 서울 강남 말고 세상에 또 몇 군데나 있겠습니까? 게다가 황금시대 명문여고 동창들이 아직도 야단법석하며 만나는 곳이 서울입니다. 호주 중소도시는 서울에 비해 너무 자극이 없어요. 게다가 아파트를 처분하면 그 돈은 당신 손을 떠날 공산이 크기에 적수공권으로 맞을 인생에 굉장히 불안해하시는 것이지요.
시어머님은 급성 노인기 우울증으로 보입니다만, 그래도 오신 김에 우선 치매 진단을 중심으로 한 종합진찰을 받아보시지요. 그 연세에 합당한 건강상태로 판명되신다면 이민과 아파트 처분을 연기하시고, 당분간 서울에 계시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우울증은 곧 풀릴 것입니다. 외아들이 노모 모시기를 피한다는 가족들 오해는 생길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모르니 그럴 때 중요 결정은 이곳의 시누이들에게 맡기면 좋습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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