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상승, 노사평화 파괴 등을 이유로 외국인고용 허가제를 일관되게 반대해온 중소기업계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제도 도입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길어지면서 중소기업계 내부에서도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히면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외국인산업연수업체협의회' 소속 회원 300여명이 16일 고용허가제 반대 시위를 벌인 뒤 취한 행동은 이처럼 복잡한 기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날 '중소기업 다 죽이는 고용허가제 결사반대' 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마친 이들은 수백 여개의 달걀을 기협중앙회 건물에 던졌다. '고용허가제 반대'라고 써 있는 현수막과 피켓은 순식간에 누렇게 물들었다.기협중앙회 석연찮은 행보
기협중앙회는 지난 10일 "노동부의 고용허가제 도입 방침에 맞서 16일 중소기업인 1만 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반대 집회와 가두 서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불과 두 시간 여 만에 취소되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달 초 김영수 기협중앙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대정부 투쟁 방안'으로 직접 언급했던 방침이 극적으로 뒤집힌 것이다.
기협중앙회 주변에서는 기존 방침의 철회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극적인 반전'을 놓고 외부 압력 개입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이 중소기업청을 통해 기협중앙회에 전달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협중앙회는 현재 일부 정치권을 대상으로 한 설득작업 외에는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찬성-반대로 분열 조짐
15일에는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61개 중소기업들의 '고용허가제 찬성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중소기업 대표 박남서(56)씨는 "현 제도 하에선 불법체류자나 이들을 고용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범법자"라며 "마음 편하게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영세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고용허가제 도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 참여 중소기업의 수를 늘려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계란시위를 주도했던 한상원(50) 협의회장은 "기협중앙회가 연간 50억원의 예산을 지원해주는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 다수 중소기업인의 입장 대변하기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를 찬성하는 일부 의견은 '시민단체의 사주'라고 일축했다.
외부 입김에 깊어지는 내홍
일련의 사태에도 계속 침묵해 온 기협중앙회측은 21일 "고용허가제 반대의지는 굳건하다"면서도 "중기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밝혀 최근의 '몸 사리기'가 정부의 의지와 무관치 않음을 내비쳤다.
중기청 관계자도 "고용허가제는 대세"라고 강조했다. 이는 '중소기업계가 원하지 않으면 힘들다'라는 기존 입장에서 돌아서 고용허가제 도입 입장을 굳히고 이를 산하 중소기업 단체에도 관철하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근 '정부시책과의 부합'을 강조한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의 발언도 이 같은 상황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정부의 고용허가제 도입 의지가 확고해짐에 따라 중소기업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정부의 지원책에 힘입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중소기업계의 본질적 한계가 고용허가제를 계기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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