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미 군정 책임자인 예비역 장성 제이 가너(64)가 21일 바그다드에 도착, 이라크 재건·인도지원처(ORHA) 처장으로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라크 재건은 길목에 잠복한 지뢰들이 잘 드러나지 않고, 피아 구분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미군이 손쉽게 승리를 거머쥔 지상전에서보다 훨씬 까다롭다.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이라크 재건의 험로를 따라가 본다. 미국 심기 건드리는 시아파수만명의 시아파 교도들이 22∼23일 시아파 최대의 성지인 바그다드 남부 카르발라에 운집한다. 이라크 인구의 60%를 점하면서도 소수파인 수니파의 사담 후세인 정권 하에서 박해를 받아온 이들은 그동안 성지순례조차 금지당했다. 그러나 이번 성지순례는 종교적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아파 성직자들은 이라크의 장래와 관련, 후세인의 세속적 정권과는 대조적으로 이슬람 국가종교를 이루기를 바란다.
이들은 미군의 조기 철수를 요구하며 반미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편, 오랜 외국 망명을 끝내고 귀국한 재야 인사도 불신하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준 정부 역할을 자처하며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민심을 잡아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이들을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고, 시아파 내부 및 종파간 갈등이 확대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라크 석유는 어떻게
전쟁 중 미군이 가장 신경 썼던 곳은 이라크 유전시설. 바그다드 폭격 와중에도 석유부 빌딩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알 자지라 방송은 미군이 석유부와 발전소 건물에 부비트랩까지 설치하며 옛 공무원들의 접근을 막는 등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석유 장악 의도에 프랑스 러시아 등 반전국들이 거세게 맞서고 있고 향후 석유 산업 복구에 프랑스 등 반전국 기업을 배제시킬지 여부도 민감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0일 석유 산업 통제권에 대해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체제 세력인 이라크국민회의(INC)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른바 '석유조정위원회'가 권한을 주장하는가 하면, 최근 귀국한 반체제 인사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특별 각료회담에 참석할 것이라는 소문도 떠돈다는 것이다.
후세인 정권 처리
과거 후세인 정권의 악행을 어느 정도까지 처벌해야 할까. 미국은 이라크 지도부 핵심 55인의 수배전단을 배포하는 등 철저한 응징 의사를 밝히는 한편, 과거 만행까지도 들춰낼 태세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라크 재건'을 다룬 최신호 특집기사에서 "과거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상처를 남길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지난 일을 해결하려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이라크를 건설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법률 체계 확립
후세인 정권 하의 법률 체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쉽지 않다. 상당수 이라크인들은 독재 정치의 악법이 없어지길 원하면서도 익숙한 이전 법률을 고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전 정권 하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발생한 재산권의 합법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과거 정치범이나 국외 추방자들이 소유했던 재산의 원상 회복도 민감한 문제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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