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가 달라집니다. 봄의 때깔이 말입니다. 광릉 숲에는 봄이 더디 오다 보니 목련이며 벚나무들의 화사함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저를 경이롭게 하는 것은 멀리 바라보이는 산의 빛입니다. 어제와 또다른 오늘의 그 빛깔은 다채로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싱그러우면서도 부드러워 짧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그런데 요즘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감동하는 것은 땅 위의 변화 뿐 아닙니다.오히려 땅속에서 진행되는 일에 생각이 미치면 더욱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는 '뿌리깊은 나무'가 있습니다. 또 사람이나 사물이나 이론이나 깊이 들어가 근본을 논의하고자 할 때는 모두 '뿌리'이야기를 합니다.
나무에게 있어서 뿌리란 몸체를 지탱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뿌리로 인해 나무들은 현재 그 모습으로 서있게 되지요.(식물에 따라서는 붙어 있기도 하고 떠있기도 합니다만). 땅속을 들여다보면 나무의 수관(樹冠)만큼이나 커다란 나무뿌리들이 이 땅에 든든한 근거를 내리고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굵고 튼튼하며 검고 단단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무 뿌리지만 그 끝은 아주 섬세한 뿌리털과 생장점, 그리고 이를 덮어 보호하는 뿌리골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간혹 커다란 암벽 틈새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강인한 소나무를 봅니다만, 그 뿌리도 처음엔 아주 여리고 가는 뿌리 끝이 바위틈 어딘가에 나 있는 섬세한 틈새를 찾아내 들어가는 일로 시작해 점차 길고 굵어진 것입니다. 뿌리가 아주 빨리 자라는 경우는 시간당 1㎜, 그러니까 하루 2∼3㎝나 자랍니다.
정말 놀라운 뿌리의 저력은 새로 난 뿌리들의 표면에 덮여 있는, 우리가 흔히 뿌리털이라고 부르는 하얀 솜털에 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식물에게도 물은 생명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물에 섞인 무기물들이 바로 이 뿌리털을 통해 들어옵니다. 왜 가늘고 섬세한 뿌리털을 많이 달고 있는 것일까요? 보다 효과적으로 물을 흡수하려면 땅과 접하는 면적을 넓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뿌리털의 표면적은 얼마나 될까요? 호밀 뿌리로 실험을 한 결과가 있는데 5㏄ 정도의 부피를 차지하는 뿌리에 달리는 뿌리털의 표면적을 계산해보니 테니스 코트 2개에 깔아놓을 정도라고 하고, 또 어떤 식물의 뿌리에서 하루 동안 자라는 뿌리털의 길이를 모두 더할 경우 9㎞에 달한다고 하니 정말 놀랍습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흡수된 물은 물관을 통해 올라갑니다.
식물에 따라, 물관의 굵기에 따라 그 상승속도가 모두 다른데,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칡의 일종인 식물은 시속 100m를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굵은 뿌리 끝의 솜털, 큰 그늘을 가진 뿌리 깊은 나무의 삶도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고 보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세월은 흘러도 감각 만큼은 섬세하게 살려놓고 싶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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