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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한총련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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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한총련 어디로 가나

입력
200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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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연세대 학생회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정재욱(23·연세대 총학생회장) 의장의 기자 간담회에는 20여 명의 보도진이 몰렸다. 이틀 만에 다시 열리는 기자 회견이었고 나이 어린 대학생의 얘기였지만 언론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정 의장은 "아침에는 라디오 출연, 낮에는 기자회견, 저녁이면 각종 대책회의, 밤 늦게는 TV 토론회에 출연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상황"이라며 "한총련의 향후 행보가 노무현 정부의 국정 방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보고 주위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한총련이 '발전적 해체'를 선언하면서 학생운동이 개혁의 길로 접어 들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맞물려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자 문제가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새 지도부의 향후 행보는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한총련 변화의 조짐

13일 경희대에서 끝난 한총련 대의원대회는 한총련의 향후 행보를 점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총련의 주축인 민족해방(NL) 계열이 두 세력으로 나뉘어 각각 의장 후보를 냈고 재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결과는 의외였다. 한총련을 대중적 학생운동 조직으로 전환하자는 혁신계열의 정 후보가 그 동안 한총련을 주도했던 반(反)외세 자주통일 투쟁 중심의 자주계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정 의장은 당선 일성으로 "한총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학생들의 생활 속으로 다가가는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혁신계열 정 의장의 당선은 한총련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정 의장은 '스스로의 혁신을 통한 합법화'로 한총련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이어서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 논의는 이미 점화한 상태다. 한총련 인적 구성의 변화도 이러한 움직임에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총련 관계자는 "한총련 주요 지도부인 대변인, 조국통일위원장 등에 혁신계열 총학생회장이 당선됐고, 한총련을 실질적으로 꾸려가는 중앙 집행국장도 혁신계열로 채워질 예정이어서 한총련의 노선 변화는 힘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외적인 여건도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다. 노무현 정부는 수시로 "한총련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한총련의 변화 움직임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는 난망

신임 한총련 의장단은 '새로운 학생운동조직을 만들고 2∼3년 내에 안정화 시킨다'는 계획 아래 연구소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정 의장은 "학생운동에 반감을 가진 일반 학생들과 정치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중민주(PD)계열 학생운동 조직을 모두 끌어 안을 수 있는 300만 한국 대학생의 연합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와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 건설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에서 요구하는 '정치투쟁 중지'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총련은 지난해 대선 부재자투표소 설치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총선에서도 진보정당과 연대해 정치투쟁을 전개할 계획이고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 전면 개정 투쟁과 남북 학생 교류행사 개최 등 자주통일운동도 주요 활동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의장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여전히 자주 민주 통일"이라며 기본원칙에는 변화가 없을 것임을 거듭 표명하고 있다.

한총련 내부의 자주계열이 일선 학교 총학생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변화의 폭을 좁히는 요소다. 자주 계열인 전남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적단체 규정도 철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임 의장단이 한총련 해체를 먼저 주창한 것은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한총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와 환골탈태의 뜻이 없던 한총련 모두가 변화하는 시대 조류에 맞춰 한 발씩 양보하는 상황"이라며 "한총련은 내부를 되돌아 보며 바깥을 지향하는 열린 자세의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한총련 역사와 현황

한총련은 6년간 반독재 투쟁을 이끌어 온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해체하고 '학생운동의 대중화'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를 내세우며 1993년 4월 출범했다.

당시 전국 237개 대학과 단과대 학생회까지 포괄하는 실질적인 학생운동의 대표조직이었다. 하지만 96년 8월 연세대 점거 농성사태 이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돼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급속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98년 대법원이 '연방제 통일 방안' 등을 내세운 5기 한총련에 대해 법적으로도 이적단체로 판단하면서 한총련의 쇠퇴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이후 상당수 한총련 관련 수배자들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기술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법원의 시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총련의 정책이 남한을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규정하면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북한의 대남정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97년부터 학생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총학생회장, 단과대 회장, 동아리연합 회장 등이 무조건 사법처리 대상자로 분류돼, 매년 200여명씩 구속·수배되는 모순을 낳기도 했다. 4월 현재 한총련 관련 수배자는 175명이다.

당초 200여개 달하던 참여대학 중 90여곳이 탈퇴하는 등 '이적단체' 한총련의 위기는 학생운동의 붕괴라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한총련은 2001년 대의원대회에서 종전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삭제하고 '6·15남북공동선언 정신'을 강령에 삽입하는 등 합법화를 위한 유연화 전략을 추진했다. 올해 11기 한총련 의장으로 당선된 정재욱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14일 기자회견에서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와 새로운 학생운동조직체 건설"을 밝히고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한총련의 이 같은 변화노력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운동권 내부의 노선갈등과 대학사회의 외면 등 불리한 여건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과연 한총련이 시대변화에 걸맞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어 낼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강위원 한총련합법화대책위원회 집행국장은 "애초 정치적인 논리에서 비롯된 이적단체 규정은 정치적 차원의 결단과 의지로만 풀릴 수 있다"며 "학생들도 새로운 시대변화에 걸맞는 유연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 정재욱 한총련 의장

"지난해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가 돼 환성을 질렀고,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나갔다. 한총련의 변화도 이러한 새 세대의 힘을 모아 이뤄가겠다."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 발언을 통해 충격을 던진 한총련 정재욱(사진) 신임 의장이 개혁을 시작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나 공안당국 관계자를 만나고 싶다"며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한총련 의장으로서 주력하는 부분은.

"늦어도 5월 11기 한총련 출범식 전에는 합법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반전운동도 소홀히 하지 않을 계획이다."

―한총련 수배자 문제 해결 방안은.

"새로운 조직으로 간다고 해서 수배자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수배자 문제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해결하고, 한총련은 또 다른 방향에서 합법화를 추진하기 위해 새 조직을 건설할 계획이다."

―새로운 학생운동조직의 모습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는 좌파계열 학생운동 조직과 그간 한총련을 외면해 온 많은 대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우선 목표다. 그 속에서 저항과 반대만 하는 세력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건강한 운동세력으로 자리잡아 나가도록 할 것이다."

―기존 한총련의 조직 운영에 있어서 폐쇄성 논란이 있었는데.

"각 대학 학생회장들을 무조건 잡아 가두는 바람에 한총련이 일반 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한총련 이적 규정이 철폐되면 과감한 변화와 혁신으로 대중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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