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 여성사 박물관, 여성 연극, 여성 예산, 여성 음악제 등 '여성'이 주요한 사회코드로 등장한 요즘이지만 이 중에서도 '서울 여성영화제(위원장 이혜경)'는 특히 눈에 띈다.'여성'이라는 이름을 단 많은 기획들이 자금을 비롯한 여러 현실적 문제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있을 때 여성 영화제는 벌써 5회째라는 개가를 올리며 페미니스트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눈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 여성영화제의 모습을 본떠 작년 일본 오사카에서 '시스터 웨이브(Sister Wave)'라는 여성영화제를 탄생시킨 야마가미 치에코(山上千惠子·60) 후지 미쓰코(藤美津子·59) 미키 소코(三木草子·60)씨가 18일 막내린 서울 여성영화제를 참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01년 제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서울여성영화제에 참석한 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본에도 '여성영화제'라는 이름을 단 행사는 많이 있지만 단지 여성이 만들었거나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영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실망스러웠죠. 서울여성영화제는 제대로 된 '여성영화제'가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하는지 일깨워줬습니다."
영화감독이면서 '시스터 웨이브'를 총괄하는 야마가미씨는 진정한 '여성영화'는 그것을 본 여성에게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당시 타리 이토라는 레즈비언 행위예술가의 삶을 담은 42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디어 타리(Dear Tari)'를 출품, 관객상을 수상했다.
일본에 돌아간 야마가미씨는 친하게 지내던 여성학자 미키씨, 화가 후지씨와 의기투합해 2002년 가을 오사카에서 '시스터 웨이브'의 막을 올렸다.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3일간 진행된 이 행사에는 일본 한국 대만 캐나다에서 온 14편의 여성영화들이 선보였다.
일본 페미니스트사를 정리한 3권짜리 저서 '70년대 일본 여성 해방운동사'의 작가이기도 한 미키씨는 "그 동안 일본의 페미니즘은 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돼 온 것이 고작"이라며 "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중시하는 것은 영화제 자체 뿐 아니라 과정에 있어서의 페미니즘이다. 상하관계에 의한 명령체계에 의존하는 남성적 업무방식은 효율적일지는 모르나 작은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후지씨는 "각자 맡은 분야를 따로 정해 평등한 토론을 거쳐 모든 사안을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30대나 60대, 모두 똑 같은 발언권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감명 깊게 본 작품으로 여성노동자 12명의 복직투쟁을 그린 '눈물꽃'(감독 신현주 이옥선)과 장애여성 공동체에관한 '거북이 시스터즈'(장애여성 공감, 여성영상집단 움 공동제작)를 꼽았다.
야마가미씨는 한국의 여성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일본 영화의 주인공보다 밝고 힘차고 긍정적이라서 보고 난 후 용기를 얻게 한다고 평했다.
미키씨는 "2년 단위의 '시스터 웨이브' 2회 행사는 2004년 열릴 예정이지만 기업들의 인식이 부족해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푼돈을 모아서라도 이 영화제를 여성을 위한 종합 문화축제로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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